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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예우미는 갑자기 정윤재를 밀쳐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숨소리는 거칠게 엉켜 나왔다. “내가 말했잖아. 그럴 기분 아니라고.” 계속된 거절에 정윤재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잠시 어두운 빛이 그의 눈동자에 스쳤지만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그는 결국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자.” 다음 날 아침. 예우미가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정윤재는 아직 방 안에 있었다. “아직 안 갔어?” 그녀가 의아하게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여기 말고 어딜 가겠어?” 그는 능청스럽게 다가와 그녀를 안으려 했다. “어제 우리 우미 속상하게 해서 오늘 하루 휴가 냈어. 달래주려고. 괜찮지?” 그 말에 예우미는 단번에 눈치챘다. 정이현은 이제 그녀를 달래줄 마음조차 없었고 그 역할을 동생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가슴이 서늘하게 아려왔다. “괜찮아. 굳이...” “커플들이 꼭 해야 하는 백 가지 리스트, 너 전에 그거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오늘 그거 다 해보자.” 예우미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그는 억지로 그녀를 끌고 나갔다. 놀이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영화관에서 팝콘을 나눠 먹으며 겉보기엔 평범한 연인과 다름없었지만, 하루 종일 그에게 이끌려 다니는 동안 예우미는 자신이 그저 감정 없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자, 정윤재는 그녀를 고급 바로 데려갔다. “술 한잔해. 긴장 좀 풀고.”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말했다. “금방 올게.” 그가 나가자 조용한 방 안에 혼자 남은 예우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피곤했고 그저 하루빨리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쿵!’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며 술 냄새가 진동하는 남자 몇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여기 사람 있네?” “와, 이거 완전 예쁘잖아!” “아가씨, 우리랑 한잔하지? 얼마면 돼?” 예우미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저,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비웃었다. “하하, 이런 데 오는 여자가 다 그런 사람이지. 순진한 척은 왜 해?” 그중 한 명이 비릿하게 웃으며 문을 잠그자 예우미는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려왔고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쾅! 그때,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정윤재가 얼굴이 일그러진 채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이 개자식들!” 그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몇 명이 쓰러졌지만 상대는 여럿이었다. 몸싸움이 격해지던 순간, 한 남자가 빈 술병을 집어 들고 예우미를 향해 내리쳤다. “조심해!” 정윤재가 외치며 그녀를 감싸안았다. 쨍그랑!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려 그녀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정윤재는 비틀거리며 낮게 신음을 내뱉었지만 눈빛은 오히려 더 사나워졌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몸을 일으켜 술병을 든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 잠시 후, 보안 요원들이 몰려와 상황을 정리했지만 정윤재는 결국 예우미의 품으로 무너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피가 멈추지 않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병원으로 이송된 정윤재는 응급실로 들어갔고 예우미는 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밤을 새웠다. 새벽녘, 간호사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했다. “환자 상태는 안정됐어요. 곧 깨어날 거예요. 잠시 쉬었다가 오세요.” 예우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병실을 나서다가 문득 외투를 두고 온 게 생각나 발걸음을 돌렸다. 병실 문 앞에 다다른 순간,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윤재의 목소리였다. “괜찮아. 죽진 않아.” 그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응, 계획대로 됐지. 뭐 어쩌겠어? 이런 자작극이라도 없으면 그 여자가 또 나랑 잘 생각이나 하겠어?” 예우미의 몸이 굳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근데 인정해야 돼. 진짜 괜찮더라. 피부 하얗고 허리 잘록하고...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여자가 신음할 때, 살짝 경하 누나 같더라니까. 닮았어, 그 느낌이.” 예우미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좋아하냐고? 당연히 경하 누나 좋아하지. 근데 나만 좋아하냐? 우리 형도 좋아하잖아.”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뺏으라고? 하, 그럴 필요 있나. 경하 누나는 형이랑 서로 좋아하는데...” “그래도 뭐, 형이 아직 완전히 정리 안 했으니까, 그 전에 몇 번 더 자두면 손해는 없잖아?” 그 순간, 예우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늘 밤, 그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했던 모두 연극이었고 그가 직접 짠, 치졸하고 비열한 각본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고 죄책감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녀의 몸을 욕망으로 소비하며 다른 여자의 그림자를 좇던 남자의 저열한 놀음이었을 뿐이었다. 예우미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힘껏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병실 문을 등지고 돌아서자, 눈물이 앞을 가려 바닥이 흐릿하게 보였다.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겨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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