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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밤이 되자, 붕대를 감은 채로 정윤재가 아파트로 돌아왔다. “우미야, 어떻게 돌아왔어? 나 때문에 날 샌 것 같은데 병원에서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마치 병원에서 내뱉은 그 차가운 말들이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얼굴이었다. 예우미는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과 역겨움을 꾹 눌러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룻밤 내내 간호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잠깐 쉬러 왔어.” 정윤재는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다쳤는데 이제 화 좀 풀어주면 안 돼? 응?” 하지만 예우미가 다시 한번 거칠게 그를 밀쳐내자 정윤재의 표정이 비로소 굳어졌다. “예우미, 내가 몇 번이나 달래줬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내가 어제 다 풀어줬잖아?” “너는 나랑 있을 때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울먹이며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연히 아니지!” 정윤재가 재빨리 대답했다.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네가 좋아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우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과 함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스스로를 조롱하듯 터져 나온 서글프고 공허한 웃음이었다. 그 시선 속에서 정윤재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짜증을 동시에 느꼈다. 결국 그는 외투를 거칠게 집어 들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날 밤, 그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 순간, 예우미는 비로소 아주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한 예우미에게 동아리 회장이 다가왔다. “우미야, 이번 주말에 단합회 있거든? 고기 먹으러 갈 건데, 꼭 와야 돼!” 예우미는 망설였다. “선배, 나...” “우미야.” 회장이 그녀의 팔을 살짝 붙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이번에 네 남자친구도 같이 부르면 안 돼? 그 사람 회사 크잖아. 선배들이 곧 인턴 나가는데 다들 인맥 좀 쌓고 싶어 하거든. 근데 평소엔 접근할 기회도 없고 해서...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 예우미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봤자 답이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아리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잘해줬기에 결국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믿기 어렵게도 주말이 되자 정이현은 정말로 나타났다. 다만, 그의 곁에는 눈부신 미소를 지은 박경하가 함께였다. 정이현은 예우미를 보더니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메시지 보냈을 때 마침 경하랑 같이 있었어. 그래서 같이 온 거야.” 그 말에 예우미의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아릿하게 쿡 하고 저렸다. 고기를 굽는 내내, 정이현의 시선은 오로지 박경하에게만 머물렀다. 고기가 익자마자 가장 먼저 그녀 접시에 올려주고 기름진 부위는 정성스레 잘라냈다. 게다가 그녀의 입가에 소스가 묻으면 아무렇지 않게 휴지로 닦아주었다. 그 모든 세심한 배려는 예우미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 지난 2년이 떠올랐다. 정이현은 귀하게 자란 재벌 집 아들이었기에 언제나 그녀가 눈치를 보며 그를 챙겨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원래 그런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알았다. 그가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 앞에서만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박경하가 자신이 싫어하는 반찬을 자연스럽게 그의 그릇에 덜어주면 정이현은 미묘하게 얼굴을 찡그리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집어 먹었다. 예우미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심한 결벽증이 있었고 다른 사람이 건드린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녀가 실수로 자기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그의 그릇에 올렸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표정을 굳히더니 그 밥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모든 원칙과 습관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 깨달았다. 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두가 벌칙 게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진 사람은 박경하였다. 벌칙은 독한 술 석 잔 마시기였고 박경하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순간, 정이현이 손을 뻗어 잔을 가져갔다. “얘 술 못 마셔. 내가 대신 마실게.”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그는 아무 표정 변화 없이 잔을 연달아 비웠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감탄했고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이후 예우미도 게임에서 졌다. 벌칙은 아주 매운 소스를 잔뜩 바른 꼬치를 먹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입 먹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정이현을 바라봤지만 그는 박경하와 고개를 맞대고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차가운 현실이 점점 그녀의 심장을 잠식해 들어왔다. 잠시 후, 모두가 정이현에게 실습 관련 조언을 구하러 몰려갔고 테이블에는 예우미와 박경하만 남았다. 박경하는 잔을 내려놓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예우미, 너 이현 오빠 여자친구라며? 근데 이 자리 내내 오빠는 네 쪽은 한 번도 안 봤네?” 예우미는 아무 말 없이 물을 들이켰다. 박경하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 안 가. 이현 오빠가 왜 너 같은 애랑 사귀었는지. 여자친구라면서 존재감도 없고 노출 사진 터진 것도 다들 봤잖아. 집안도 별 볼 일 없고 이런 바닥에서 그런 배경이면 그냥 공기 취급이지.”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사람들이 널 ‘청순 여신’이라 부른다고 진짜 여신이라도 된 줄 알았어? 네가 뭘 믿고 그 사람 옆에 있어?” 그 모든 독설이 쏟아지는 동안, 예우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침묵했고 그런 침묵이 오히려 박경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박경하가 막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직원이 숯불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러다 숯을 갈던 중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달아오른 숯덩이가 그대로 밖으로 튀어 올랐다. “꺄악!” 박경하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정이현이 번개처럼 달려왔다. 주저함도 없이 그녀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등으로 튀어 오른 숯불을 그대로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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