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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안재희의 말에 차주한은 5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술 한 잔, 사실 그는 애초에 원치 않았던 일이었다. 설령 안신혜가 술을 마셨더라도 차주한은 본래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안재희의 협박과 유혹 끝에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그 기회는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차주한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음침한 기운이 서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이걸 안신혜에게 쓰겠다는 거야?” 안재희는 약병을 움켜쥔 채,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왜? 그러면 안 돼? 설마 마음이 약해진 거야? 착한 내 동생한테 쓸 때는 아무렇지 않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주저하는 거야? 고작 저런 여자 하나 때문에.” 그 말에 차주한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그는 전 약혼녀 이야기를 꺼내는 안재희가 불쾌했지만 애써 담담한 척했다. 솔직히 안재희의 계략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차피 안신혜만 자기 손에 들어오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그녀 또한 감히 자기 앞에서 고고한 척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게다가 방금 전, 안신혜가 송승현의 팔에 기대어 웃으며 떠나던 모습이 떠올라 차주한은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결국, 감정이 이성을 압도했고 차주한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래서 네 요구는 뭔데?” 안재희는 씩 웃더니 대답했다. “네가 안신혜를 망가뜨리는 장면을 전부 찍어. 그리고 그 영상을 나한테 넘겨.” “뭐라고?” 예상치 못한 말에 차주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안재희가 악랄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신까지 끌어들이려 할 줄은 몰랐다. “시*, 지금 나도 같이 죽이려는 거야?” 안재희는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내가 네 얼굴까지 찍으랬어? 그냥 안신혜만 찍으면 돼.” 차주한은 잠시 침묵했다. ‘영상? 이대로 정말 무너뜨리려는 건가?’ 그는 여전히 망설였다. 자신이 원하는 건 단순히 안신혜를 손에 넣는 것이지 이렇게까지 그녀를 망가뜨리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재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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