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최주원의 목울대가 살짝 움직였다. 그는 손을 거두고 돌아서서 소파에 앉았다.
숟가락을 쥔 채 김을 후후 불더니, 양순자가 손아윤을 위해 끓여 온 닭국을 떠먹었다.
“맛 괜찮네.”
그는 뜨거운 김을 불어 가며 몇 숟갈 만에 그릇을 비웠다.
“더 있어요?”
양순자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손아윤을 먹이려고 끓인 것이라서 말이다.
“다음에는 좀 더 끓여요.”
최주원이 덧붙였다.
“아주머니는 최씨 가문의 도우미가 아니에요!”
손아윤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싫다는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손씨 가문에서 일한 적 있지. 나 기억해.”
최주원은 입가를 닦으며 다리를 꼬았다. 축 늘어진 정장 바지 위로 젖은 자국이 한 덩이 남아 있었다.
그는 휴지를 뭉쳐 찻상 맞은편 쓰레기통에 정확히 던져 넣었다.
말투는 건조하게 가벼웠다.
“계속 손아윤을 돌보고 싶어요, 말아요.”
손아윤은 이불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아주머니는 손씨 가문에서 이미 그만두셨어요. 은퇴하셨어요.”
“은퇴했어도 다시 부를 수는 있지. 결국 본인이 하고 싶냐, 그거야.”
최주원은 입가에 옅은 웃음을 올리고, 양순자에게 온화한 얼굴로 물었다.
“할 거예요?”
양순자는 손아윤의 긴장한 눈빛 신호와 마주쳤다.
마음이 흔들렸다.
손아윤을 돌보는 일이라면 당연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정원에서 벌어진 장면이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떠올랐다. 최주원이 결코 만만히 상대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한쪽은 손아윤 씨가 걱정되고, 다른 한쪽은 괜히 얽혀서 손아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웠다.
“제가 나이도 많아서 상주하는 가사도우미 일은 못 합니다. 아가씨는 예전 주인으로서 정이 있어서요, 가끔 시간 날 때 들러서 안부만 살피는 정도면 됩니다.”
그 대답을 듣자, 손아윤의 팽팽하던 신경이 풀렸다.
“오케이, 그럼 됐어요. 송도윤, 손님 보내.”
최주원의 말이 끝나자 경호원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양순자를 좌우에서 끼고 강제로 병실 밖으로 모셔 나갔다.
양순자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아윤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아가씨...”
“제가 제 몸은 챙길게요. 돌아가세요.”
손아윤은 양순자가 멀어지는 걸 지켜본 뒤, 소파에 앉은 남자를 비스듬히 흘겨봤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당겨 등을 돌린 채 다시 누웠다.
그다음 순간, 침대 가장자리가 반쯤 꺼졌다.
그녀가 돌아보자 칠흑 같은 눈과 마주쳤다. 경계심이 확 치솟았다.
“뭐 하시는 거예요?”
“좀 쉬자.”
최주원은 한쪽 다리를 굽히고, 팔을 머리 뒤로 받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신 나갔나.’
손아윤은 이불을 들추고 내려가려 했다. 바로 그때 허리에 뜨거운 감각이 닿더니, 그의 긴 팔에 가볍게 끌려 그대로 품 안으로 들어갔다.
“낮에 번지도 뛰었는데, 밤에 안 피곤해?”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손아윤은 그 시선을 따라 아래를 보았다. 잠옷 목선 단추가 언제 풀렸는지, 앞섶이 벌어져 있었다.
최주원의 각도에서는 안쪽이 고스란히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급히 다시 잠갔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목선이 또 느슨해졌다.
“왜 이래요?”
몇 번을 다시 채워도 소용이 없어서 자세히 보니 단추가 반쯤 깨져 있었고 단춧구멍이 벌어져 걸리지 않았다.
손아윤은 아예 쿠션을 집어 들어 앞가슴을 가렸다. 그의 눈길을 막아 버리려는 몸짓이었다.
“볼 것도 없는데 뭘 가려.”
최주원은 입꼬리를 비틀며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고는 가볍게 비웃었다.
손아윤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리고 그의 웃는 얼굴에서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저는 바뀔 수도 있어요. 팽이버섯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이즈인 것보다는요.”
최주원은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품 쪽으로 더 눌러 붙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쥐고 입술을 비스듬히 올려 웃었다.
“한 사이즈인지 아닌지는 직접 겪어 보면 되잖아.”
손아윤은 허리에 감긴 그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
“저는 팽이버섯이 되는 것에 관심 없어요. 누가 겪고 싶다면 알아서 찾아가요!”
말싸움으로 기분이나 풀려던 거였다. 그녀는 그의 잠자리 상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손아윤은 몸을 틀어 재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슬리퍼를 거꾸로 신은 것도 모르고, 멈추지 않고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