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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네가 달인 약 안 먹어! 누가 감히 먹겠어?” 심하윤이 다섯 시간 동안 정성껏 달인 한약이 바닥에 모조리 쏟아졌다. 그녀는 찢어질 듯한 마음을 부여잡고 눈시울이 빨개진 채 해명에 나섰다. “아니야, 그런 거! 너 위 아프다고 달인 한약이야. 안에 아무것도 없어!” 모든 비극의 서막은 3년 전에 시작됐다. 원래 그녀의 매부가 될 사람이었던 도강우가 약에 취해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 것이다. 도씨 일가는 명성과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도강우에게 그녀와 결혼하라고 강요했다. 그 뒤로 그녀의 명성은 바닥을 쳤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임다인의 약혼자를 빼앗고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 삿대질했다. 심하윤이 필사적으로 해명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소꿉친구로서 20년 동안 쌓아온 우정은 결혼 첫날 밤 그가 내뱉은 모진 말로 변질되었다. “심하윤, 네가 너무 역겨워” 그동안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도강우가 위장병이 있어서 요리와 약리학을 필사적으로 연구하며 직접 요리했고 심지어 본인 사업을 포기하고 묵묵히 가정주부가 되어주며 모든 정력을 이 남자에게 쏟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족들에게 모진 학대를 받았어도 도강우만이 그녀 뒤에 굳건히 서서 항상 믿어주고 편들어주며 이 세상에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임다인이 입양된 이후로 심하윤은 그녀의 모함을 받고 명예를 다 잃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했고 한때 평생 지켜주겠다고 말했던 도강우마저도 뭇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반대편에 섰다. 임다인이 다친 것도 그녀의 잘못이고 우는 것도 죄다 그녀의 잘못이었다. 심하윤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라온 정이 불쑥 입양된 임다인보다도 못하다는 말인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도강우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다. “제발 더는 가식 떨지 마. 전에 화재가 났을 때 다인이가 필사적으로 나를 구했어. 넌 영원히 다인이를 따라갈 수 없어! 종일 따지고 꼼수 부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뭔데?” 심하윤은 그의 말에 놀라 뒷걸음치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등 뒤의 흉한 화상 흉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리 조각이 무릎에 박히는 고통보다 이 남자의 말이 더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쿡 찔렀다. 그해 도강우를 구해준 사람은 분명 그녀였고 흉한 흉터까지 남았지만 아무리 해명해도 믿어주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거짓말만 한다고 비난했고 등 뒤의 상처는 불쌍한 척 연기하려고 일부러 만든 거라고 했다. “다인이는 어릴 때부터 후원을 받고 자란 아이라 힘들게 살았지만 마음씨가 착해. 이제 겨우 발레 무용수가 되었으니 앞으로 제발 좀 다인이 괴롭히지 마.”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경고장을 날렸다. 어제 임다인은 그녀 앞에서 새로 받은 트로피를 손수 깨뜨린 다음 그녀가 질투해서 일부러 깨트린 후 누명을 씌운 거라고 말했다. 이에 심하윤은 절대 그런 적 없다고 해명했고 그 당시 방에 CCTV도 달려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도강우의 비난과 불신이었다. 그는 심지어 CCTV조차 보려 하지 않고 심하윤만 심술궂고 질투에 눈이 멀었다고 몰아붙였다. 심하윤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목이 꽉 막힌 듯 답답해서 이제 막 해명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위장에서 격렬한 통증이 터져 나오며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황급히 가방 속으로 손을 뻗어 허겁지겁 진통제를 찾았다. “또 무슨 수작이야?” 도강우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너무 세게 쥔 나머지 뼈가 다 부러질 지경이었다. “그해 그 일을 또다시 반복하려고?” 한편 심하윤은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고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차오르더니 선홍빛 핏물을 왈칵 내뿜었다. 비싼 카펫에 흩뿌려진 핏자국은 섬뜩할 따름이었다. 도강우는 잠시 멍해졌고 손에 튀긴 피를 보며 심장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무슨 생각이 났던지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돌아왔다. “연기하지 마. 죽으려면 멀리 가서 죽어! 내 앞에서 죽는 것도 역겨우니까!” 그는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심하윤은 잘려나간 고목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20년 넘게 사랑한 남자한테서 돌아오는 건 결국 이런 말뿐이라니... 서러움, 아쉬움, 슬픔 이 모든 감정이 왈칵 터져 나왔고 뜨거운 눈물이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약을 줍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겨우 삼켰다. 몸의 통증은 조금 완화되었지만 마음의 고통은 억누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심하윤이 힘겹게 전화를 받자 소꿉친구 성시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윤아, 이제 다 결정했어? 넌 지금 병원 가서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고!” 다만 그녀는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져 끙끙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 볼게.” 성시완은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야, 심하윤! 너 진짜 도강우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생각이야? 계속 치료 미루면 3개월밖에 못 살아.” 말을 마친 성시완이 너무 화나서 전화를 끊었다. 한편 심하윤은 무기력하게 손을 떨어트리고 저 자신을 비웃었다. 그녀는 실은 어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도강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거실에서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도통 돌아오질 않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임다인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제 심하윤의 소원은 단 하나, 도강우와 오해를 풀고 어릴 때처럼 허물없이 지내다가 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다만 이마저도 사치가 될 줄이야. 도강우는 그녀를 치 떨리게 증오하고 하루빨리 죽길 바라는 듯싶다. 그래야만 임다인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정교한 웨딩드레스 설계도가 그녀 앞에 떨어졌다. 그녀는 시선이 고정된 채 오른쪽 하단에 적힌 결혼 날짜를 빤히 쳐다봤다. 어쩐지 도강우가 몇 달 전에 또 이혼을 강요하더라니, 바로 이것 때문인가 보다. 그는 마침내 소원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잘 지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둘의 결혼 날짜가 정작 심하윤이 생을 마감하는 그날이었다. ‘내 죽음은 아무도 모를 거야. 어차피 강우는 다인이한테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주려고 온 신경을 퍼부을 테니까.’ 눈물이 설계도에 툭 떨어지고 몽환적인 그림을 축축이 적셨다. 이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임다인이 우아한 화이트 드레스 차림으로 들어왔다. 처참하게 바닥에 쓰러진 그녀와 달리 고고한 자태만 내뿜는 그녀였다. 임다인은 거들먹거리다가 짐짓 놀란 척하며 물었다. “어머, 언니 왜 이러고 있어? 강우도 진짜 너무해. 어떻게 언니한테 이럴 수 있지?” “신경 꺼.” 심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눈앞의 그녀는 바로 심하윤의 부모님이 전에 후원하던 가난한 학생이자 현재 명의상 동생인 임다인이다. 또한 도강우가 사랑하는 여인이기도 하다. 임다인은 피식 웃더니 하이힐로 정확하게 심하윤의 손등을 밟고 힘껏 비벼댔다. “으악!” 살을 후벼 파는 고통에 심하윤이 비명을 질렀다.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임다인이 너무 세게 짓눌러서 꼼짝할 수 없었다. 이어서 이 여자가 음침한 미소를 날리더니 허리를 숙이고 그 설계도를 주웠다. “강우가 날 위해 디자인한 드레스잖아. 어때? 이쁘지? 나한테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줘서 온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대! 언니는 좀 아쉽겠지만 그래도 우릴 축복해줄 거지?” 심하윤은 손가락이 어느덧 뻣뻣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어머, 미안. 손 밟은 줄도 몰랐네?” 그제야 임다인이 발을 떼고 표독스러운 얼굴로 쏘아붙였다. “근데 왜 피까지 토하는 거야? 아 참, 언니 엄마도 위암으로 죽었다던데, 너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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