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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상대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던 듯 즉시 답장을 보냈다. [이렇게 순순히 나올 줄은 몰랐네... 도운 씨의 말만 들어서는 사리 분별도 못 하고 결단력도 없는 줄 알았거든.] 고현지의 말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담겨 있었고 그 말은 그대로 원시아의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원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상대가 보내온 이혼합의서를 받아 출력했다. 서명하려고 펜을 들었지만 손이 떨려 제대로 쥘 수조차 없었다. 여덟 살부터 스물다섯까지, 꼬박 17년 동안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신도운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 밖 불량배들에게 눈에 띄어 골목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때 맨손으로 달려와 그들을 쫓아낸 사람이 바로 신도운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도 그는 다친 곳 하나 없는 원시아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원시아, 너는 내 목숨이야. 누구도 널 다치게 못 해.” 피 묻은 얼굴로 지은 그 미소, 목숨을 걸고 지켜낸 그 순간... 그때부터 신도운은 그녀의 마음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그 모든 추억을 도려내는 일은 원시아 자신의 생의 한 조각을 잘라내는 것과 다름없었고 고통은 참기 힘들 만큼 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펜을 꽉 쥐었다. 그렇게 손끝이 하얗게 질릴 즈음, 메시지 두 통이 연달아 도착했다. 하나는 고현지였다. [도운 씨가 새 콘돔 한 박스를 샀어. 오늘 밤이면 다 쓸 거라고 나랑 내기까지 하더라.] 그리고 또 하나는 신도운이었다. [시아야, 계약에 문제가 생겨서 오늘 밤 회사에서 야근해야 할 것 같아.] ‘야근...’ 산후조리 기간 동안 갑자기 잦아졌던 그의 야근이 전부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원시아는 이성을 놓아버린 듯 합의서를 끌어당겨 한 획 한 획 힘주어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펜을 내려놓는 순간, 가슴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 원시아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신해 그룹으로 향했다. 고현지는 이미 최상층에 있는 대표이사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올 줄은 몰랐네.” 비웃듯 말하며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자 목덜미에 선명한 붉은 자국들이 드러났다. “사인은 문제없네. 곧 도장 찍어줄게.” 그러고는 금고 비밀번호를 눌러 열더니 신도운의 인장을 꺼냈다. 신해 그룹 최고 권한을 상징하는 그 인장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도장을 찍은 뒤, 고현지는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는 한 달의 숙려 기간이 지나면 효력이 생겨. 원래 변심한 남자는 붙잡을 수 없는 법이거든. 나중에 후회하지 마.”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덧붙였다. “아, 어제 내기 말이야. 도운 씨가 졌어. 콘돔을 열한 개만 썼거든... 남은 하나는 너한테 남겨줄게.”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끝까지 비아냥거렸다. 원시아는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말했다. “걱정 마. 절대 후회 안 할 거니까... 그런 중고인 남자는 네가 계속 써.” 원시아는 분노로 인해 표정이 일그러진 고현지를 더 이상 보지 않고 돌아섰다. 그런데 몇 걸음 떼자마자 정면에서 신도운과 마주친 것이었다. 그는 잠시 놀란 듯하다가 곧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시아야, 네가 왜 여기에... 혹시 나 보고 싶어서 왔어?” 늘 그랬듯 다정한 목소리에 순간 가슴이 시큰해지며 말이 튀어나왔다. “신도운, 우리....” ‘이혼하자’는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고현지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도운 씨, 나 배고파.” 그 순간, 신도운은 눈가가 새빨갛게 젖은 원시아를 외면한 채 몸을 돌렸다. “미안, 아침도 안 먹었는데 회사에 데려와서.”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시아야, 할 말 있으면 저녁에 하자. 기사 불러서 집에 데려다줄게.” 한때는 단 한순간도 그녀를 남에게 맡기지 못하던 신도운이 이제는 완전히 안심한 얼굴이었다. 원시아는 고현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바라보며 가슴 가득 차오른 슬픔을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비에 거의 다다랐을 때, 신도운과 고현지가 다시 따라 나왔다. 신해 그룹 직원들이 가득한 로비 한가운데서 고현지는 연고 하나를 내밀었다. “사모님, 도운 씨한테 들었어요. 튼살이 많이 심하다면서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더러운 게 생기면 남자가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죠. 약 좀 자주 발라요!” 노골적인 조롱에 주변에서 일제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수많은 시선이 원시아의 몸으로 쏟아졌다. 분노와 수치심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녀는 온몸을 떨며 연고를 힘껏 쳐냈다. “필요 없어! 튼살은 더러운 게 아니야!” 연고가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고현지의 눈빛이 잠깐 날카로워졌다가 이내 억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도운 씨, 난 그냥 좋은 마음에 그런 것뿐인데...” 모든 시선이 신도운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는 살짝 붉어진 고현지의 손끝을 바라보다가 표정을 굳혔다. “원시아,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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