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들뜬 목소리로 곧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지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병실로 돌아갔다.
그 뒤 며칠 동안 하정현과 지승호는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돌봤다.
그리고 드디어 퇴원 날이 찾아왔다.
이날, 하정현은 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양말을 신겨 주었다.
길고 매끄러운 손가락이 다리의 상처를 피해 움직였고, 움직임은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부드러웠다.
“아파?”
그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깊은 눈동자에는 연민이 가득했다.
지연우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퇴원 수속 다 끝났어.”
지승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새 외투를 들었다.
“밖에 바람 엄청 불더라. 연우야, 더 껴입어.”
그가 몸을 숙여 외투를 걸쳐 주자, 지연우는 익숙한 우드 향을 맡았다.
그건 그녀가 18번째 생일에 지승호에게 선물했던 향수였다.
속이 뒤집히는 듯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그녀는 입술을 세게 깨물어 토하지 않았다.
휠체어 바퀴가 병원 로비의 반짝이는 바닥을 지나갈 때, 사방에서 시선이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소변 주머니가 휠체어 옆에 매달려 있어 옮길 때마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났다.
행인 한 명이 호기심에 두 번 쳐다보자 지승호는 얼굴을 굳혔다.
“뭘 봐요?”
하정현은 따뜻한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그의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다.
“우리가 지켜 줄게.”
지연우는 온몸이 떨렸다. 그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직접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그녀를 아껴 주는 두 사람이 그녀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악마라는 사실을 어찌 믿을 수 있었을까.
“연우야, 여기 잠깐만 있어.”
하정현이 그녀를 그늘에 밀어 두며 말했다.
“차 가져올게.”
두 사람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지연우는 갑자기 휠체어 방향을 틀었다.
차라리 기어서 떠날지언정, 더는 그들의 가식적인 보살핌을 받고 싶지 않았다.
병원 모퉁이를 막 돌았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주차장 쪽에서 들려왔다.
“연우 스캔들 다 뿌렸어?”
지승호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응.”
하정현이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연우 상태 이미 최악인데, 굳이 가짜 스캔들까지 만들어서 망신 줄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지!”
지승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용계에서 완전히 추락해야 유림이한테 영원히 방해가 안 돼!”
휠체어가 벽에 세게 부딪쳤다. 지연우는 입을 막았고, 피비린내가 입안에 퍼졌다.
그들은 그녀의 인생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까지 짓밟으려 했다.
미친 듯이 휠체어를 돌려 달아나려다가 병원 정문 앞 기자 무리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지연우 씨! 여러 남성과 관계를 맺다 장애를 입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남자들과 어떤 사이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무용가가 이렇게 문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때, 광기에 휩싸인 팬들도 갑자기 몰려들어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지연우, 내가 눈이 멀었지. 널 좋아하다니! 진짜 더러워!”
“네가 그놈들이랑 놀 수 있다면 우리랑도 놀아 줄 수 있겠지?”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수많은 손이 미친 듯 그녀의 옷을 잡아 찢기 시작했다.
“안, 안 돼... 만지지 마!”
지연우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더러운 손길을 밀어냈지만 소용없었다.
찌익!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온몸에 흉측한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벼락같은 수치심이 덮쳤고, 숨이 막혀 들이쉬기도 힘들었다.
“우웩, 역겨워! 소변 주머니까지 달고 있네!”
“세상에, 빨리 찍어서 올려! 무용계 여신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 주자!”
짧은 정적 뒤, 혐오와 경멸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귀를 때리는 따귀처럼 거센소리에 지연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져 상처 위로 스며들자 개미가 파먹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비켜! 다 비켜!”
하정현의 목소리가 폭발하듯 울렸다.
그는 인파를 헤치고 뛰어들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지승호는 기자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고함쳤다.
“경호원! 경호원들 어디 갔어!”
둘의 호흡은 완벽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흠잡을 데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연우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연극이 그들 손으로 짜인 각본이라는 걸...
그들은 그녀를 난잡한 여자로 못 박아 명성을 박살 내고, 이제부터 하수구 속 쥐처럼 햇빛도 못 보게 만들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애지중지 품은 강유림은 가장 눈부신 무대에서 세상의 환호와 사랑을 받을 것이다.
보다시피 그들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