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며칠 동안 쌓인 모든 억울함과 상처가 마치 눈사태처럼 강유진을 덮쳤다.
아무리 단단히 쌓아 올린 마음의 방어벽도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감정이 이성을 완전히 압도했다. 강유진은 하재호에게 직접 묻고 싶은 충동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정신이 조금 돌아왔을 때, 이미 그녀는 하재호 집 앞에 서 있었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왔고 급하게 나온 탓에 외투조차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살을 에는 추위가 목덜미를 타고 스며들었지만 강유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하재호와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하재호의 차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차 불빛이 눈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잠시 적응한 뒤 다시 바라보니, 차는 이미 전용 주차공간에 정확히 멈춰 있었다.
강유진이 말을 꺼내려는 찰나, 운전석에서 노윤서가 미소를 띤 채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목구멍이 막히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재호는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고 작고 분홍색 여행가방을 꺼냈다.
한눈에도 여자 물건임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는 순간 강유진의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시간, 강유진은 그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벌써... 같이 살기 시작하는 건가?’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씁쓸하게 숨을 내쉬었다.
‘하긴... 오랜 시간 사랑해온 사람이랑 드디어 당당하게 함께할 수 있는데, 굳이 지체할 이유가 있을까...’
그저 사랑하지도 않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과만 시간을 질질 끌 뿐이었다.
사랑은 기다림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관심이 없을 뿐, 그뿐이었다.
순간, 모든 것이 선명해졌고 마음은 차갑게 식어 잿빛으로 물들었다.
강유진은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집 안의 불빛이 켜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미 무뎌진 심장이었지만 찌릿하게 아픈 감각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대로 마주했다.
한때,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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