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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홍유빈은 계하린의 차를 타고 이곳에 왔던지라 그녀는 정문 앞에 서서 택시 호출 앱을 열었다. 하지만 이 클럽은 위치가 워낙 외져 아무도 콜을 받지 않았다.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뒤에서 홍유빈의 어깨에 올라왔다. 오늘 홍유빈은 검은색 얇은 끈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어깨에 손길이 닿자마자 바로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물러섰다. 그녀는 가방을 앞에 세운 채 경계하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홍유빈은 심지훈을 알지 못했지만 구겨진 셔츠와 목덜미의 붉은 자국만 봐도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윳빛갈이던 그녀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졌고 문 앞의 경비원을 힐끗 바라봤지만 경비원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모른 척했다. 심지훈은 음흉하게 웃었다. “하하, 이봐요, 오해하지 말아요. 그냥 친구나 하자고요.” 그는 한 걸음씩 다가오며 능글스러운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계민호의 첫사랑도 돌아왔는데, 스폰서 하나 바꾸는 게 어때요?” “누구의 카나리아든 다 똑같잖아. 난 어때요? 나도 한번 생각해보지 않겠어요?” 갈색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며 다가오는 그림자를 담아냈다. “당신, 누구예요?” 그녀는 차갑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심지훈은 몇 마디 말로 겁에 질린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외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간 계민호가 왜 그렇게 꼭꼭 숨겼는지 알 것 같았다. 진작 알았으면 벌써 손에 넣었을지도 몰랐다. 홍유빈은 남자가 잠시 말을 멈춘 틈을 타 고개를 숙여 신고하려 했지만 성인 남성과 여성의 힘의 차이는 이 순간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빼앗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팔을 꽉 붙잡았다. “에이, 신고하면 재미없잖아요.” 흩어진 머리카락이 뺨에 붙은 채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 살려요!” 그녀는 경비원의 양심이 깨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이곳은 시끄러운 클럽이었고 직원들이 심지훈을 모를 리 없었다. 아무도 심씨 가문 도련님의 일에 끼어들 수 없었고 끼어들 여유도 없었다. 홍유빈이 오늘로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따뜻한 품으로 끌어당겼다. 신시후의 눈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고 그는 거침없이 발로 남자를 날려버렸다. 그는 품 안의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한 홍유빈을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유빈 씨 남편 여기 있어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저기 가서 얌전히 서 있는 거예요. 뒤돌아서, 보지 말고.” 홍유빈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시후는 신음하는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내 그는 주저 없이 급소에 주먹을 꽂았고 심지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너 뭐야, 내가 누군지 알아? 사람 부르면 당장 죽여버릴 거야, 알아들었어?!” 신시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가오려던 경비원들은 그의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 남자가 바로 이곳의 주인이라는 걸 알아봤기 때문이다. 바닥의 남자가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어서야 신시후는 손을 멈췄다. 그는 턱을 들어 경비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구급차 불러도 돼요.” “아, 알겠습니다!” 신시후는 돌아서서 불안에 떠는 여자를 다시 안았다. “가요. 이제 괜찮아요.” 홍유빈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그 사람... 죽은 건 아니죠?” 신시후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요. 유빈 씨는 내가 그렇게 분별없는 사람처럼 보여요?” 홍유빈은 그제야 깊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은 너무 무서워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었다. “고마워요.” 그러자 신시후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말로만?” ... 신시후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홍유빈은 거절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일어난 일이 너무 무서워 홍유빈의 손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운전하던 신시후는 곁눈질로 그녀의 얼굴을 봤고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홍유빈을 성희롱하던 심지훈을 더 세게 때리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심지훈이 심씨 가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인간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의 아파트 앞이었다. 회색 대리석 바닥은 차갑게 빛났고 검은 가죽 소파와 금속 프레임 스탠드 외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통유리창 너머의 서울 야경이 방 안의 유일한 색채였다. 이 바람둥이의 집이 이렇게 미니멀할 줄은 몰랐다. 서류상 남편이라 해도 낯선 남자의 집에 서 있으니 어색했다. 게다가 아직 같은 침대를 쓸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저... 그냥 집에 갈게요.” 홍유빈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신시후는 넥타이를 풀어 소파 위에 던졌다. “얌전히 있어요. 방금 싸워서 힘 좀 썼더니 더는 데려다줄 힘 없거든요.” 그는 장난스럽게 홍유빈을 바라봤다. “설마 내가 뭐 하려는 줄 알았어요?” 홍유빈은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대리석에 그녀의 난처한 얼굴이 비쳐 입술을 깨물며 낮게 말했다.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신시후는 웃으며 그녀를 손님방으로 밀었다. “유빈 씨는 여기.” 그리고 문을 열며 말했다. “이쪽이 유빈 씨가 쓸 방이에요. 안방은 꿈도 꾸지 말고요.” ... 홍유빈은 방문을 닫고 조용히 안쪽에서 문을 잠갔다. 침대 위의 침구는 새것처럼 보여, 사용된 흔적이 없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른바 ‘서류상 부부’인 남편에 대해 홍유빈은 자신이 생각보다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심시후는 그녀가 상상했던 인물과는 조금 달랐다. 바람둥이지만 의외로 신사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이 생각이 든 홍유빈은 피식 웃었다. 참 모순적인 표현이었다. 그때 핸드폰에 메시지가 하나 떴다. [안서화: 내일 저녁 일곱 시야. 늦지 마!] 홍유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내일 두 집안의 ‘상견례’가 끝나면 그 ‘좋은 어머니’에게서 이자까지 받아낼 생각이었다. ... 홍유빈은 밤새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낯선 환경 때문일 수도 오늘 클럽 앞에서 있었던 남자의 추근거림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며 몇 번이나 눈을 떴다. 결국 동이 틀 무렵, 홍유빈은 조용히 신시후의 집을 나섰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난 신시후는 텅 빈 손님방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벌써 간 건가?’ 그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담원 별장 리모델링 다시 해요. 전부 따뜻한 색감으로 최대한 빨리.” 저녁 일곱 시, 홍유빈은 클라우드 입구에서 어머니 안서화를 만났다. 안서화는 강도형의 팔을 끼고 우아하게 걸어왔다. 그녀는 딸의 무난한 흰 원피스를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수수한 거 아니니?” 그러나 강도형은 웃으며 말했다. “수수한 것도 좋아. 더 단정해 보이잖아. 됐어, 이만 들어가자.” 안서화는 걸으면서 당부했다. “유빈아, 이따가 좀 능숙하게 굴고 말도 예쁘게 해. 평소처럼 답답하게 굴지 말고. 시집가면 너 혼자만 대표하는 게 아니야. 우리 강씨 가문을 대표하는 거라고.” 홍유빈은 담담한 어투로 반박했다. “하지만 전 성이 홍 씨예요. 강 씨가 아니라.” 안서화는 불쾌한 눈빛으로 딸을 보았다. “너, 아저씨 없었으면 이런 재벌가에 시집이나 갈 수 있었겠니?” 웨이터가 음식 카트를 밀며 급히 지나가다 홍유빈을 치는 바람에 그녀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었고 익숙한 시더우드 향이 코끝을 스쳐 홍유빈이 고개를 들었다. ‘어...라? 언제 왔지?’ 이내 신시후의 손이 홍유빈의 허리에서 떨어졌다. 강도형은 홍유빈보다 더 놀란 표정이었다. “하하, 신시후 씨, 여기 계셨군요!” 그는 홍유빈에게 얼른 눈짓했다. “유빈아, 신시후 씨한테 인사드려야지.” 홍유빈은 순간 멍해졌다. “네...? 신... 시후 씨요?” 안서화는 멍하니 서 있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서 팔을 꼬집었다. “서울 신씨 가문의 아들, 신시후잖아. 멍하니 서서 뭐 해, 어서 인사 안 해?” 홍유빈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러니까 심 씨가 아니라... 신 씨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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