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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은성미는 눈을 떴을 때 1989년으로 돌아와 있음을 깨달았다. 서른 살, 그녀의 남편 주경진은 서른다섯 살로 은하 연구원의 최연소 수석 연구원이 되어 국가의 핵심 인재로 촉망받고 있었다. 슬하에는 열 살 된 쌍둥이 아이들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은성미의 행복을 부러워했다. 결혼도 잘하고 아이도 잘 낳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환생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 서류 두 장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자 비서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답했다. “사모님, 교수님께서 바쁘셔서 시간 없으십니다.” 연구원 입구에서 그를 기다렸지만 경비원이 그녀를 제지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서 면회를 거절하셨습니다.” 3일 후, 은성미는 이혼 서류를 들고 주경진의 첫사랑인 강아림 앞에 섰다. 그녀는 서류를 강아림 앞에 밀어놓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주경진더러 이 서류에 도장 찍으라고 해요. 이제부터 주경진과 아이들 모두 강아림 씨거예요.” 강아림은 충격받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주경진을 17년이나 사랑했던 은성미가 스스로 양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은성미 씨, 무슨 짓이에요?” 은성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지만 눈빛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전 이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다들 강아림 씨를 더 좋아한다면 저도 이제 필요 없어요. 제가 물러날게요. 여러분의 사랑을 축복해 줄게요.” 강아림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은성미를 쏘아봤다. “정말 포기할 수 있어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석 연구원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부러워하는지 알아요?” “알아요.” 은성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강아림 씨, 전 이제 됐어요. 강아림 씨에게 양보할게요.” 강아림은 손안의 물컵을 꽉 쥐었다. 평소의 부드러운 얼굴에 침울함이 드렸다. “누가 양보해 달라고 했어요?” 침묵 후 그녀는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리며 테이블 위의 이혼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은성미 씨가 먼저 물러선다니 제가 애쓸 필요도 없겠네요. 은성미 씨, 현명한 선택이에요. 명심해요. 제 손에 들어온 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은성미가 웃었다. “남자도 아들도 다 필요 없어요.” 정말 필요 없었다. 전생에, 그들을 곁에 두었지만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번 생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강아림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정교한 웨이브를 넣은 헤어스타일과 드레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은성미는 그녀가 택시를 나고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유 모를 충동에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를 따라갔다. 연구원 입구에서 그녀는 강아림이 경비원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 것을 봤다. 잠시 후, 주경진이 다급하게 달려 나와 그녀를 안으로 데려갔다. 은성미는 눈을 내리깔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평생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곳을, 강아림은 너무나도 쉽게 드나들고 있었다. 은성미는 은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이혼에 대해 오랜 설득 끝에 겨우 부모님과 합의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자 집 안은 불빛이 환했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 나왔다. 주호영이 외쳤다. “아림 이모, 어서 와서 밥 먹어요. 아빠가 맛있는 거 많이 해놨어요!” 주민영이 거들었다. “아림 이모, 아빠가 요리하는 거 처음 봐요! 얼른 와서 먹어요!” 은성미는 멈춰 섰다. 지난 생에는 죽는 날까지 주경진이 해준 밥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산후조리 중 며칠 동안 음식을 해줄 사람이 없었을 때도 그는 그저 식당에서 음식을 사다 줄 뿐이었다. 강아림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진 씨, 제가 생선 좋아하는 거 기억하고 있었네요.” 주경진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늘 기억하고 있었지. 어서 와서 먹어. 생선 가시 발라놨어.” 은성미는 제자리에 서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주경진은 생선을 가장 싫어했다. 결혼 초, 그녀가 좋아하는 생선찜을 만들자 주경진의 얼굴이 굳어지며 식탁을 박차고 나갔었다. 그녀는 당황해서 한참을 달래 겨우 그의 생선에 대한 혐오감을 알게 되었다. 그날, 그녀는 생선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야 겨우 그를 식탁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 후 10년간 집안의 식탁에는 생선이 오르지 않았다. 강아림이 떠난 후, 그는 생선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빠, 아림 이모가 너무 좋아요! 아림 이모가 우리 엄마가 되면 좋겠어요!” “맞아요. 아빠, 엄마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아림 이모랑 같이 살고 싶어요.” 은성미는 더는 들을 수 없어 뒷걸음질 쳐서 돌아섰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기억은 빗방울처럼 그녀를 강타했다. 전생에 그녀와 주경진의 60년 결혼 생활은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 첫사랑 강아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주경진은 모두 군공단에서 자랐고,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알았다. 13살, 사춘기 소녀는 그 넓은 단지에서 가장 멋지고 뛰어난 주경진에게 열렬히 반했다. 하지만 그때 주경진의 곁에는 이미 첫사랑 강아림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몇 년간 연애했지만 대학 졸업 때 강아림이 갑자기 유학을 떠났다. 주경진은 몇 년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강아림의 이별 편지뿐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25세, 그는 절망에 빠져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늘 주경진을 지켜봐 온 그녀는 즉시 그에게 고백하며 자신을 아내로 맞아달라고 했다. 그녀는 주경진의 차분하고 냉담한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어. 정말 잘 생각해 본 거 맞아?” 은성미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사랑으로 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는 것은 그의 냉담함과 소외감뿐이었다. 강아림이 돌아온 후에야 그녀는 사랑과 무관심의 차이가 얼마나 명확한지 알게 되었다. 전생에 그는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내라는 타이틀을 그녀에게 주었지만 그의 모든 사랑은 강아림에 향했다. 그의 두 아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점점 더 냉담해졌다. 그녀는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평생을 보냈다. 그녀의 노년은 요양원에서 쓸쓸히 보냈다. 거동이 불편했지만 가족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요양원의 간호사들은 매일 그녀를 학대했다. 그녀는 주경진과 두 아들에게 수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녀는 옆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주경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는 두 번을 말하더니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주경진이 아들, 손자, 증손자들과 함께 강아림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떠들썩했다... 이미 탁하고 메마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순간, 은성미는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다시는 주경진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은성미는 길가 벤치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집안은 텅 비어 있었고 식탁에는 그릇과 접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녀는 흘긋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화장대 위에는 서명된 이혼 서류가 놓여 있었다. 은성미는 주경진의 휘갈긴 서명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60년간 그녀를 옭아매던 굴레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이혼 서류를 막 주워 담으려던 순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엄마, 너무 게으르잖아요! 식탁이 이렇게 더러운데 왜 안 치우는 거예요!” 장남 주호영이 그녀를 노려봤다. 차남 주민영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비난했다. “엄마는 너무 인색해요. 우리가 아림 이모랑 밥 먹는 거 보고 바로 가버리더니, 지금도 일부러 안 치우는 거잖아요!” 주경진의 눈빛은 여느 때처럼 담담했다. “그냥 식사 한 끼 갖고 뭘 그렇게 소란스럽게 해? 네가 할 일이나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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