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엄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주호영과 주민영이 뛰쳐 들어왔다.
자신의 옷이 불 속에 던져지는 것을 보고 그들은 달려들어 은성미를 거칠게 밀치며 그녀의 손에 있던 옷을 빼앗았다.
“너무해요!”
주호영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우리가 아림 이모가 산 옷이 예쁘다고 칭찬했다고 우리 옷을 다 태워버리려는 거예요?”
주민영이 소리 질렀다.
“우리한테 이렇게 인색한 엄마는 없어요! 아림 이모가 산 옷이 훨씬 예쁘다고요! 훨씬! 엄마가 만든 것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예쁘다고요!”
강아림이 달려들어 두 아이를 붙잡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은성미 씨. 제가 아이들에게 옷을 사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주경진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손을 뻗어 강아림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림아, 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사과할 필요 없어.”
“은성미, 사과해!”
석양과 불길이 은성미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녹지 않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네 사람을 몇 초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조롱하듯 웃었다.
그녀는 몸을 숙여 남은 모든 옷을 불 속에 던져 넣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문을 쾅 닫았다.
곧이어 밖에서 주호영과 주민영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 침대 쿠션 어디 갔어!”
“내가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인형이 없어졌어!”
“우리 장난감! 모래주머니! 팽이! 잠자리채!...”
두 아이의 울음소리는 처절했다.
“우리 장난감이랑 옷이 다 없어졌어요! 아빠, 우린 이 못된 엄마 필요 없어요...”
방 안의 불빛이 점점 어두워져 희미한 빛줄기만이 남았다.
은성미는 무릎을 안고 바닥에 앉아 멍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심장은 누군가 두 손으로 꽉 쥐어짜는 듯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
“은성미, 문 열어!”
주경진이 몇 번 문을 두드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힘껏 문고리를 돌렸다.
“나와서 얘기해!”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되잖아. 세 살짜리 애처럼 떼쓰지 마! 은성미, 주호영과 주민영은 네 아들이야. 이런 짓을 하면서 엄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문이 갑자기 열렸다.
은성미의 표정은 지쳐 있었다.
그녀의 눈은 호숫물처럼 고요했고 목소리는 더없이 평온했다.
“전 자격이 없어요. 강아림 씨가 자격이 있겠죠.”
주경진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리며 말했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요.”
은성미는 그의 언제나 담담한 눈을 바라봤다.
“주경진 씨, 지난 몇 년간 제가 헛된 망상을 했어요. 모두 강아림 씨가 좋다면 제가 물러날게요. 여러분의 사랑을 축복해 줄게요.”
“은성미!”
주경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주호영과 주민영은 네 아들이야!”
그는 심호흡했다.
“결혼 전에 너에게 명확하게 말했었지. 결혼과 아이를 너에게 주었어. 그 이상 뭘 원한다는 거야?”
은성미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결혼과 아이... 지난 생에 그녀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삼켜지지 않는 분함을 마음에 안고 인생을 허비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주경진 씨, 저는 이 모든 것을 원하지 않아요. 우리...”
“원하지 않으면 됐어요!”
주호영과 주민영이 달려들어 주먹을 쥐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엄마는 돈도 못 벌잖아요! 매일 집안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고 우리에게 공부만 시키고, TV도 못 보게 하고,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게 하잖아요! 우리 엄마 할 자격도 없어요!”
“우리는 아림 이모처럼 예쁘고 상냥하고 춤도 잘 추는 엄마를 원해요!”
“좋아.”
은성미는 두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쉬어 있었다.
“주호영, 주민영. 너희들 소원은 곧 이루어질 거야.”
주경진은 미간을 크게 찌푸려졌다.
“무슨 뜻이야?”
쾅!
문을 힘껏 닫고 난 은성미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문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앉더니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경진 씨,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당신도 원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