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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러면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간호사는 손태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슬며시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와, 정장 진짜 잘 어울리네. 생긴 것도 멀끔하고... 그런데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왜 하필이면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는 여자와 결혼하게 된 거지? 그것도 아픈 사람 기 살려주겠다고 한 결혼이라니... 안타깝다.’ “감사합니다, 간호사 선생님. 유니폼이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푸흣... 아이, 감사합니다.” 손태하의 말에 간호사는 민망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참, 보호자분... 환자분은 아직도 의식을 못 찾고 계세요. 안 교수님 말씀으로는 보호자분이 틈틈이 와서 자주 말을 걸어주시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특히 남편분이 곁에 계셔주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면,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겨날 수도 있대요. 정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정말요?” “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우리 병원에서 제일 베테랑인 안 교수님이세요. 안정원 교수님은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교수님으로 계시지만 예전에는 한의사로도 아주 유명하셨던 분이거든요.” “그러시군요...” 손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면 지금까지 지유 씨가 깨어나지 못한 게...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런데요... 지금처럼 계속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길어야 2주 정도밖에 못 버틸 거라고 하셨어요.”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잇고 나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양지유가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 앞에 도착했다. 병실 안은 조용했다. 바이탈 사인 모니터에 숫자와 그래프만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호자분, 면회하시는 동안엔 환자분께 힘이 될 만한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양지유 환자는 일반적인 경우랑 좀 달라서... 가까운 분이 자주 와서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게 특히 중요하거든요.” “네, 간호사 선생님. 혹시 예전에도 누가 와서 말 걸어준 적은 있나요?” “아, 오긴 왔었죠. 하지만 환자분께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오늘은 남편분이 오셨으니까... 저희도 한번 기대해 보려고요. 그럼 저는 이만 다른 업무 보러 갈게요.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간호사 선생님.” “별말씀을요.” 간호사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 며칠 사이, 양지유의 얼굴은 더 창백해진 듯했다. 숨결조차 희미해진 그녀를 바라보며 손태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결혼이 그저 1억짜리 거래였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눈앞에서 생명이 점점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사람이 죽어가는 걸 직접 마주하면 누구라도 이런 기분이 들겠지. 무슨 얘기를 해주는 게 좋을까...’ 손태하는 조심스레 의자를 끌어와 병상 머리맡에 앉았다. “양지유 씨? 제 말... 들리세요?” “저는 손태하라고 해요. 얼마 전에 대학교 졸업했어요.” “사실 저... 잘생겼다는 소리 종종 듣거든요. 진짜예요. 가난한 시골 출신이 아니라면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손태하는 농담 섞인 말투로 가볍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뭐, 듣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그냥 제 얘기 좀 해볼게요. 생각해 보니 대학 다니는 내내 누군가에게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해본 적도 없네요. 그리고 우리... 이미 혼인신고까지 마쳤잖아요. 법적으로는 제가 지유 씨 남편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여보’라고 불러도 되는 거겠죠?” 그 순간 양지유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듯 보였다. “어? 지금... 뭐지?” 손태하는 놀란 듯 양지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내 착각인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손태하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여보? 방금... 손 움직였어요?” “혹시... 제 말이 들린다면 다시 한번 움직여볼래요?” 손태하는 그녀의 손끝을 바라보며 기대를 담아 다시 불러보았다. “여보...”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양지유의 손끝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 ‘내가 착각했나... 그런 거겠지?’ 손태하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조심스럽게 양지유의 손을 잡았다. 작고 여린 그녀의 손을 잡자 여전히 차가운 감촉뿐이었고 손끝에는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부터 여보라고 부를게요. 우리 혼인신고도 했고... 며칠 전에는 이 병원에서 조촐하게나마 결혼식도 올렸잖아요.” “여보... 난 당신 이름이 양지유라는 것밖에 몰라요.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고 고향이 어딘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도 전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내 아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겠어요.” 그 순간 손태하는 잡고 있던 양지유의 손끝이 정말로 아주 살짝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여보?” 손태하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하고 다급히 그녀를 다시 불렀다. “여보, 자기야... 여보... 들려요?” 혹시나 해 계속해서 이름 대신 ‘여보’라고 불러보았다. ‘설마... 여보라는 호칭에 반응하는 거야?’ 그녀에게 닿은 것만 같은 그 짧은 움직임에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여보, 여기 봐요. 우리 혼인신고 수리됐어요. 이제 법적으로도 우린 부부예요. 며칠 전 병실에서 결혼식 올렸던 거 기억나요? 당신 그때 정말 예뻤어요. 눈이 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 입고 그렇게 뽀얀 얼굴로 누워 있는 모습이... 진짜 그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손태하 자신조차도 이 감정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말로는 장난처럼 굴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진지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존댓말은 그만하려고 해. 양지유, 당신은 내 아내니까.” “어서 눈 좀 떠봐. 일어나면 우리... 같이 잘살아 보지 않을래? 나 요리도 곧잘 하고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해서 뭐든 다 해줄 수 있어. 사십 넘은 여자들은 욕구가 주체 안 된다고 하던데...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나 나름대로 복근도 있어. 빨래판 같은 복근 말이야.” 그 순간이었다. 이번엔 확실했다. 양지유의 손이 아까보다 훨씬 분명하게 움찔했다. “어?” 그때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조금 전 마주쳤던 그 간호사가 다시 들어왔다. “어때요? 환자분... 반응한 적 있었어요?” “예... 손이... 움직였어요. 분명히요.” “정말요?” 손태하의 말에 간호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얼른 침대 옆의 바이탈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어머... 잠깐만요! 지금 당직 선생님 불러올게요!” 간호사는 곧바로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뭐야...” 다시 급하게 나가는 간호사의 모습에 손태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손가락이 한 번 움직인 거잖아? 그걸로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아니면 진짜로... 자극받아서 살겠다는 의지가 생긴 건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계속 말을 걸어야 하나?’ “여보... 지금은 아파서 누워 있지만, 나 그거 알아. 당신은 진짜 예쁜 사람이란 거.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로도 이렇게 예쁜데 건강 되찾으면 얼마나 더 예쁠지 상상도 안 가.” 손태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병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간호사가 당직 의사와 함께 다급하게 병실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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