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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주호림은 말을 마친 뒤 주석호를 빤히 바라보며 우쭐해했다. 주석호가 거절한다면 내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북양이 아니라 주석호가 될 것이고 체면을 구기는 것도 주석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주석호가 내기를 받아들인 뒤 내기에서 진다면 모든 책임은 주석호가 짊어져야 했다. 그렇게 되면 주석호는 두 번 다시 그와 경쟁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긴다고 해도 공로의 일부는 그가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나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만약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주호림은 아마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을 것이다. 무황은 처음엔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주호림을 바라보았다. 주호림의 속셈을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비록 무황은 주호림의 방법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지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맞았다. 무황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섯째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석호는 주호림이 입을 여는 순간 그의 속내를 바로 간파했다. 주호림은 모든 책임을 그에게 전가할 생각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무황의 묵인에 주석호는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주석호는 조금 전 북양을 위해 큰 공을 세웠는데 무황은 상황이 달라지니 바로 그를 버리려고 했다.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무자비한 것은 황실이었다. 주석호는 주호림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양만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내기는 제가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양만수는 매우 기뻐했다. “좋습니다! 배짱이 아주 좋으시군요!” 그렇게 말한 뒤 양만수는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이내 누군가 붓과 먹, 종이를 들고 다가왔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만수가 말했다. 그런데 주석호가 손을 저었다. “급하지 않습니다.” 양만수의 미소가 굳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주석호의 말에 양만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조건입니까?” 사람들은 일제히 호기심 어린 얼굴로 주석호를 바라보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했다. 주석호가 덤덤히 말했다. “아주 간단합니다. 누가 겨루게 될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 북양에서는 무예를 겨루게 될 때 그 자리에서 누가 나설지 결정할 것입니다.” 양만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조건이었군.’ “문제없습니다. 동의하겠습니다.” 양만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했다. 북양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주석호가 왜 그런 조건을 얘기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현재 누가 무예를 겨룰지 후보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도 결국 무예를 겨루게 될 사람은 몇 없었다. 혹시 주석호 본인이 나설 생각인 걸까? 주석호는 그럴 생각이 있었다. 만약 정말로 사정이 급해지면 그가 몸소 나서야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총 없이 홀로 그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일대일로 싸운다면 지금의 나약한 몸으로도 자신이 있었다. 잠시 뒤, 문서를 다 작성한 뒤 무황에게 건넸다. 무황은 남양에서 일찌감치 인장과 서명을 준비한 것을 보고 순간 조금 후회했다. ‘역시 남양은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내가 조금 더 신중해야 했는데.’ 주석호를 향한 무황의 신뢰도가 조금 하락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 위에 이름을 적고 인장까지 찍을 수밖에 없었다. “무황 전하, 참으로 기개가 넘치시는군요! 하하하하...” 양만수는 계약이 성립된 것을 보고 양해승과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크게 웃었다. “자, 그러면 내일 아침 무투장에서 뵙겠사옵니다!” 남양 일행이 떠난 뒤 태극전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무황은 그곳에 잠깐 앉아 있다가 말없이 떠났고 태자 주호림은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일거양득을 노린 그의 방법이 먹혔기 때문이다. 적어도 주석호는 일단 해치웠다. “아바마마, 조심히 들어가시옵소서!” 주호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황을 배웅했고 그 뒤 바로 주석호의 앞으로 걸어갔다. “아우야, 이번에는 너무 경솔했다. 나는 네가 거절하기를 바라 그런 질문을 한 것이거늘 그걸 승낙하다니. 휴, 이건 다 우리 형제간의 정이 돈독지 못하여 네가 내 뜻을 헤아리지 못한 탓 같구나.” 주호림은 그렇게 말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해 보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주호림이 정말로 후회하고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주석호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냉소했다. ‘내 앞에서 연기를 하네? 가만있을 수는 없지.’ “태자 전하, 동의하지 않으셨다면 왜 말리지 않으셨사옵니까? 저는 보잘것없는 존재라 제가 한 말도 큰 힘을 가지지 못하니 태자 전하께서 말리셨다면 아바마마께서도 제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을 텐데 말이옵니다.” 주석호의 말에 주호림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평소 그의 앞에서는 기도 못 펴던 무능력한 여섯째 아우가 이렇게 화려한 언변을 갖추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하하... 하하...” 주호림은 무안한 듯 웃어 보였으나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주호림은 자신의 말에 늘 맞장구를 쳐주던 다섯째 황자 주평진이 조금 전 끌려 나갔다는 걸 떠올리고 더욱더 난감해했다. 마침 방청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현석과 함께 자리를 뜨려고 했고, 주호림은 곧바로 그들을 따라갔다. “청옥아, 방 정승. 제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참으로 황공하옵니다, 태자 전하...” 방현석은 속으로 주호림의 수단을 못마땅히 여겼지만 그래도 주호림이 태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차리며 대꾸했다. 그러나 방청옥은 방현석과 달랐다. 그녀는 싸늘해진 얼굴로 주호림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주호림은 자기도 모르게 당황했다. 연회가 시작되고 주호림이 방청옥에게 술을 권했을 때까지만 해도 방청옥은 그에게 매우 깍듯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에게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것일까? 이때 방청옥은 주호림에게 굉장히 실망한 상태였다. 주호림은 태자면서 외적을 상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를 노려 육황자를 음해하려고 했으니 참으로 간악한 자였다. 방청옥은 그런 성품을 가진 자를 매우 경멸하였다. 그러면서 방청옥은 속으로 되뇌었다. 태자가 해하려고 한 사람이 주석호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고, 다른 황자였어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말이다. 주호림은 방청옥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옆에서 계속 대화를 시도하며 방청옥과 얘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러나 방청옥은 끝까지 그를 무시했고 결국 참다못해 몸이 좋지 않아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남긴 뒤 먼저 떠났다. 그렇게 그곳에는 멍한 표정의 주호림만 남았다. 태극전 안, 주석호는 급하게 떠나지 않고 여유롭게 안에서 음식을 먹었다. “형님, 아까 정말 너무 멋지셨습니다!” 칠황자 주남기가 그에게 다가가며 선망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 전 상황에서는 주남기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던 무황마저 망설였는데 주석호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주남기는 주석호의 결단력 있는 모습을 매우 존경했다. “별거 아니다.” 주석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주석호가 말을 마치자마자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섯째야, 조금 전에 보니 아주 대단하더구나.” 주석호는 목소리를 따라가 보았다가 함께 서 있는 삼황자와 사황자를 보았다. 두 사람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석호를 바라보다가 미소 띤 얼굴로 떠났다. 그러나 대전을 떠나자마자 삼황자 주명철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넷째야, 여섯째 말이다. 만만치 않을 것 같구나.” 사황자 주덕배는 음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수단을 써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명철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상대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적당한 시기에 중요한 정보만 흘리면 된다.” 주덕배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형님, 그 말씀은...” 주명철은 손을 저으며 싱긋 웃었다. “우리 형제만 알고 있으면 된다.” 주덕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곧 떠났다. 대전 안에는 어느샌가 주석호와 칠황자 주남기, 이황자 주성훈 세 사람만 남았다. 주석호는 여전히 유유히 음식을 먹고 있었고 주남기는 주석호의 곁을 맴돌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주성훈은 술을 계속해 마셨으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주성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성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남기야, 너는 일단 돌아가거라. 나는 여섯째와 따로 할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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