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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공대훈과 통화를 마친 임윤슬은 방으로 올라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의 짐은 너무도 적어 큰 캐리어 하나면 다 들어갔다. 집 안의 물건들은 전부 공지한이 사 준 것들이라 그녀는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캐리어를 다 정리한 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가 채소 두 봉지를 챙겨 본가로 가져가기로 했다. 본가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김순자가 저녁 준비를 시작하지 않았다. 임윤슬은 아마 이번이 공대훈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직접 요리를 하려고 했고 김순자와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는 6, 7가지 반찬과 국 하나를 끓였다. 김순자와 집사에게도 시골에서 가져온 채소를 맛보게 했다. 저녁을 다 먹고 임윤슬은 핑계를 대며 공대훈의 하룻밤 자고 가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공지한과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차를 불러주겠다는 것도 사양하고 나오자 문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의 늙은 몸과 얼굴 가득한 자애로운 미소가 보였다.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공대훈의 모습은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속으로 남몰래 작별인사를 했다. ... 일주일 후 임윤슬은 변호사인 오연우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오늘 이혼 협의서를 들고 찾아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이 한 주 동안 공지한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고 임윤슬은 아마 윤하영의 집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할 말은 다 했고 관계도 끝났으니 그가 어디서 밤을 보내든 상관없었다. 다행인 것은 며칠 전 공지한을 만났을 때 헐렁한 옷을 입고 있어서 이상한 점을 들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연우는 통화를 하고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역시 현재 그룹의 엘리트 변호사답게 효율도 아주 높았다. 임윤슬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오연우는 몇 번 본 적 없는 사모님을 보며 협의서를 꺼내 설명하려 했다. 여하간에 대표님이 사모님에게 주는 위자료는 평생, 아니 다음 생이 되어도 다 쓰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사모님, 우선 협의서를 보시고 난 후에 제가 대표님과 이혼 후 사모님께서 받게 될 재산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임윤슬은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협의서를 들더니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공지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오연우는 임윤슬이 바로 사인한 것을 보고 다소 놀라고 말았다. ‘정말 자신이 얼마를 받게 될지 궁금하지도 않으신 건가?'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일은 이미 끝냈으니 더 묻지 않고 가방에서 은행카드를 꺼내 임윤슬에게 건넸다. “사모님, 이건 대표님께서 전해드리라고 하신 은행카드입니다. 비밀번호는 사모님 생신이라고 하셨고 이혼 협의서에 명시된 재산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임윤슬은 받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오 변호사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오연우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두고 일어나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이혼 신고는 월요일 오전 9시에 대표님께서 가정법원 앞에서 기다리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에 제때 도착하겠다고 전해주세요.” 오연우를 보내고 임윤슬은 핸드폰을 꺼내 안운시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그랬다. 공지한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뱃속의 두 아이를 위해 준비를 해야 했고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여러 곳을 찾아보다가 마침내 네티즌들에게서 안운시라는 살기 좋은 곳을 발견했다. 안운시는 바람이 많은 곳이었고 산과 물이 맑으며 풍경도 아름다웠다. 게다가 대도시처럼 번화하지 않아 조용히 살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여하간에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었으니까 이만큼 적합한 곳은 없었다. 아마 머지않아 공지한은 윤하영과 결혼해 새로운 가정을 차릴 것이고 두 사람에게 아이도 생길 것이다. 그녀는 두 사람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떠나는 건 비록 슬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공지한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공지한이 자신에게 이 두 아이를, 가장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 월요일 아침. 임윤슬은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홉 시 정각에 공지한의 차가 정확히 도착했고 임윤슬은 배를 가리려고 일부러 헐렁한 옷을 입어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공지한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멀리서 돌 벤치에 앉아 있는 임윤슬을 보았다. 임윤슬은 공지한의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일어났다. 그가 차에서 내려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눈빛이 한껏 지쳐 있었다. 걱정의 말을 건네려다가 꾹 참았다. 곧 이혼할 사이이고 남인데 헤어질 땐 쿨하게 헤어지자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함께 안으로 들어가 이혼 신고를 마쳤고 이혼 확인서를 들고 나왔다. 공지한이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 “임윤슬, 타. 내가 태워다 줄게.” 임윤슬은 몸을 돌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바쁘실 텐데 전 혼자 돌아가면 돼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선 채로 있었다. 그제야 임윤슬은 공지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항상 건강하고 제때 식사하세요.”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네.” 임윤슬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오랜 시간 애써 단념해 온 마음이 무너져 결국 참지 못하고 붙잡을까 봐 두려웠다. “언제 가는데? 내가 데려다줄게.” 공지한은 임윤슬의 뒤에서 말했다. “아뇨, 번거롭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저 혼자 가면 돼요.” 임윤슬은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공지한이 준 카드에서 2천만 원만 찾아낸 뒤 집으로 돌아가 그 카드를 서재 책상 위에 고스란히 올려두었다. 그러면 공지한이 돌아왔을 때 보게 될 것이니까. 그러고는 캐리어를 들고 택시를 잡아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 한편 블루나잇. 공지한은 이혼을 마치자마자 곧장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셨고 유재윤은 공주희와 지예빈도 불렀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공지한은 이미 술을 꽤 마신 상태였고 소파에 반쯤 기대 누워있었다. 우현과 지세원이 도착해 공지한이 이렇게까지 술에 취한 모습을 보고는 서로 물었다. “형이 페이라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지세원은 우현을 보았다. 역시나 그들 중 둘째답게 바로 핵심을 찔렀다. 그는 페이라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한이 형 부모님의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전 여자친구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았어.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형이 이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거든.” 우현은 그동안 공지한이 이 사건을 계속 추적해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도와주긴 했지만 단서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는데 전 여자친구와 얽혀 있을 줄은 몰랐다. “지한이 형이 얘기하고 싶을 때면 얘기하겠지.” 우현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지세원도 더 묻지 않고 함께 술잔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재윤이 공주희와 지예빈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우현과 지세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공지한을 보며 물었다. “지한이 형은 왜 저래? 갑자기 술 마시러 나오라고 부른 거 보니까 기분 안 좋은 건가?” 우현과 지세원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유재윤을 흘겨보고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유재윤은 머쓱하게 코를 만지작거리며 슬그머니 앉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면...욕구불만? 형수님이 형을 만족 시켜주지 못했나?' 공지한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챘다. 아니면 물 마시듯 술을 들이킬 리가 없지 않은가. 테이블 위엔 이미 빈 술병이 가득 쌓여 있었고 그는 말없이 소파에 기대어 있었기에 감히 나서서 묻는 사람도 없었다. 한참 뒤 강은성이 도착했다. 그런데 강은성의 옆에는 웬 여자가 있었고 그가 모임에 여자를 데리고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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