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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축하드립니다, 임윤슬 씨. 검사 결과 임신 7주 차입니다. 임신 기간에는 충분히 쉬고 영양을 보충하는 거 잊지 마세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검진도 받으셔야 합니다.” 임윤슬은 의사의 말에 두 손이 저절로 아랫배로 내려갔다.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최근 며칠째 입맛이 없고 속이 울렁거려 장염이 재발한 줄만 알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처방전이나 받아올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검사 결과를 들고 병원을 나서면서도 임윤슬은 계속 고민했다. 이 사실을 공지한에게 알릴지 말지 말이다. 핸드폰을 꺼내 그의 연락처 프로필을 눌렀다가 금세 닫기를 반복하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병원 입구 화단 옆에 앉았다. 3년 전, 자신이 의지하며 살아온 할아버지가 위독해져서 큰 도시로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병원에서 할아버지와 나이대가 비슷한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기 그 어르신은 할아버지의 전우이자 목숨을 구한 적도 있는 사람이었고 공지한의 할아버지기도 했다. 두 어르신은 수년간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난 순간 서로 알아보며 감격했지만 할아버지의 병세는 이미 심각한 상태였던지라 혼자 남을 손녀가 걱정되어 공대훈에게 부탁했다. 공대훈은 임윤슬을 보자마자 손주 며느리로 받아들였고 공지한을 재촉해 혼인신고를 서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윤슬의 할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공대훈이 임윤슬에게 결혼 의사를 묻자 임윤슬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그녀는 공지한을 좋아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병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창가로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조각한 듯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눈빛에 매료되었고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때 그녀는 공지한도 결혼에 동의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공대훈의 강요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결국 임윤슬과 공지한의 결혼은 사실상 계약 결혼이었다. 3년 전 혼인신고 전날 밤, 공지한은 한 장의 계약서를 내밀며 사인을 요구했다. “할아버지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시더군. 나더러 꼭 그쪽과 결혼하라고. 그쪽이 그렇게 원한다면 공씨 가문 며느리 자리는 줄게. 하지만 그뿐이야. 미안하지만 그 외엔 줄 수 있는 건 없고 3년 뒤 우린 이혼할 거니까.” 계약서에는 3년 후 이혼, 아이는 가지지 않으며 이혼 후 별장은 임윤슬의 소유가 되고 상당한 액수의 위자료도 명시돼 있었다. 계약서를 받은 순간 결혼을 원한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용을 읽지도 않고 속마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서둘러 이름만 적어 건넸다. 다음 날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식은 없었고 그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만 적힌 서류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윤슬아, 네가 많이 서운하겠지만 결혼식은 당분간 미뤄야 할 것 같구나.” 공대훈이 말했다. 공지한이 혼인신고는 받아들였지만 결혼식 문제만큼은 단호했고 물러서지 않았던지라 결국 임윤슬에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이해해요.” 임윤슬은 부드럽게 말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공지한의 별장으로 이사했고 공지한은 남의 간섭을 싫어해 집안에 도우미를 두지 않았고 임윤슬은 직장을 구하지 않고 집에서 요리하며 매일 공지한이 오길 기다렸다. 물론 공지한은 잘 돌아오지 않아 대부분 그녀 혼자 식사를 해야 했다. 첫해는 그렇게 조용하게 흘러갔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을 쓰며 주말이면 본가에 내려가서 식사했다. 공지한의 부모는 공지한이 어릴 때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공대훈은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에 많이 힘들었지만 손자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지한은 성장하면서 성격이 점점 무뚝뚝해졌고 말수도 줄었지만 이후 회사를 세워 성공하며 공대훈의 자랑이 되었다. 한 회사의 대표님으로서 공지한은 늘 바빴다. 임윤슬은 혼자서도 종종 공대훈을 찾아갔고 만날 때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보는 듯한 따뜻함을 느꼈다. 변화는 결혼한 지 1년 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밤 공지한은 늦게 귀가했고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운전기사가 그를 데려왔고 임윤슬은 서둘러 그를 부축해 침실로 옮겼다. 침실은 늘 임윤슬이 쓰던 방이었지만 운전기사가 있었던지라 두 사람의 사이가 어떤지 드러낼 수 없었다. 공지한은 침대에 눕히자 운전기사는 떠났고 임윤슬이 옷의 단추를 풀어주는 순간 천천히 드러나는 탄탄한 가슴을 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손목이 잡히며 균형을 잃고 그에게 쓰러졌다. 공지한은 임윤슬을 꽉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가지 마.” 그 말을 들은 임윤슬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고 곧 그가 몸을 뒤집어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어딘가 어린아이 같은 고집스러운 기운이 남아 있었고 곧 입술이 그녀를 덮쳐왔다. 임윤슬은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임윤슬은 어제의 어색함을 피하고자 일찍 일어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샤워한 후 아침을 준비했다. 한참 후에야 공지한이 방에서 나왔다. “어젯밤은...” “얼른 아침 먹어요.” 어젯밤은 단순한 사고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상처 될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임윤슬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이따가 약 사서 먹어.”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임윤슬은 고개를 들어 공지한은 보았다. “우린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그는 아주 드물게 그녀에게 설명했다. “알아요. 이따가 사러 갈 거예요.” 임윤슬은 가슴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약간의 미소를 띠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졌다. 결혼한 후 한 지붕 아래 살며 남남처럼 지냈던 사이에서 사랑이 오가지는 않지만 부부로서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한 방에서 자고 한 침대를 쓰며 부부의 생황을 보냈다. 비록 그는 늘 늦게 귀가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고 때때로 저녁을 같이 먹을 건지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본가에 가는 횟수도 많아졌다. 공대훈은 나이가 들어 증손자를 보고 싶어 했기에 아이를 언제 가질 거냐고 종종 물었다. 여하간에 둘은 곧 결혼 3년 차가 되어가니까. 지잉. 이때 핸드폰이 울리며 임윤슬은 생각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집에 안 가.] 공지한이 보낸 문자였다. [네, 알겠어요.] 임윤슬은 그의 위장이 약하다는 것을 떠올리며 바로 한 통 더 보냈다.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답장은 오지 않았고 임윤슬은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난 2년간 가까워진 듯 보여도 공지한은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불확실한 것이 많긴 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아이만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것. 그날 밤 공지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임윤슬은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아 가지 못했던 본가를 찾아가 혼자 할아버지를 뵙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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