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좋아.”
공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향했다. 윤하영도 뒤따라가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한 채 침묵했다.
“윤하영, 나도 예전에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부정하진 않아. 하지만 네가 레랑스에 있던 그 몇 년 동안, 내 감정은 기다림 속에서 이미 변했어. 내가 윤슬이랑 결혼하기 전, 널 붙잡을 기회는 수도 없이 줬잖아. 단 한 번이라도 돌아왔다면 지금 이 상황은 없었겠지. 하지만 넌 끝내 오지 않았어. 그래서 우린 이제... 완전히 끝이야.”
그는 마침내 단호히 선언했다.
“난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윤하영은 그 말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자기 최면처럼 중얼거렸다.
“지한아, 넌 날 그렇게 오래 기다려줬잖아. 그리고 지금은 윤슬 씨랑도 이미 이혼했잖아.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할아버지가 반대하면 어때? 결혼 안 해도 돼.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라도 좋아.”
“이러는 것이 좋다고?”
공지한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너, 내 친구들이랑 단 한 번이라도 어울려 본 적 있어? 내가 널 본가에 데려간 적 있냐고. 네 집에서 내가 머문 적은? 윤하영,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이야? 넌 원래부터 더 많은 걸 갈망했잖아. 스스로를 속이지 마.”
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그녀가 붙잡고 있던 환상을 하나하나 무자비하게 부숴나갔다.
윤하영은 창백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을 꼬집듯 움켜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떨림을 막을 수 없었다.
공지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넌 내가 몰랐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난 말하지 않았을 뿐이야. 윤슬이랑 두 아이... 그게 내 마지막 선이라는 걸 있지 말아 줘.”
윤하영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너지는 듯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사랑은 응답이 없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망 앞에서는 결국 시들어버린다.
몇 번의 상처쯤은 꿰매며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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