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2화
예린은 무척 기뻐해하며 은수더러 입어보라고 했지만 남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옷장에 넣어둬요.”
이 말만 남기고 은수는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예린은 거절을 당하자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약혼한 이래, 은수의 태도는 줄곧 이랬다. 미적지근한 태도는 마치 자신은 그의 약혼녀가 아니라 낯선 사람과도 같았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예린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마음속의 불쾌감을 억눌렀다.
‘됐어, 어차피 은수 씨는 내 거니까 날 사랑하지 않으면 어때?’
나중에 그들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은수는 절대로 아내와 아이를 버리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녀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면서 예린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비싼 맞춤 제작한 양복을 들고 옷장에 걸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때, 귀에 거슬리는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예린은 은수가 가져가는 것을 잊은 듯,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놔둔 것을 보았다.
그녀는 호기심에 이끌려 옷을 건 다음 다가가서 확인했다.
예린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위의 내용을 보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온은수 씨, 내가 전에 그런 말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요…..."
수현의 번호, 보내온 내용, 예린은 다 보지도 못하고 잔뜩 긴장해지며 심지어 휴대전화를 부수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다.
또 차수현이었다. 이 천한 년은 그야말로 거머리처럼 그녀의 생활에 나타났다. 지금 그녀는 가까스로 은수와 약혼하려고 하는데, 차수현이 뜻밖에도 다시 돌아왔다니?
오늘 은수는 예복점에서 이미 그렇게 매정하게 말했는데, 그녀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단 말인가?
예린은 마음속에 질투가 끓어올랐다. 은수가 수현에 대해 어떤 감정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수현더러 계속 그를 귀찮게 한다면, 한 번 두 번은 그만이지만, 횟수가 많아지면 은수도 잘못하면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예린은 손가락을 쥐고 잠시 생각한 뒤 은수의 말투로 답장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내일 회사에서 만나자."
은수가 이렇게 답장하는 것을 보고 수현은 다소 놀랐지만 또 다소 흥분해하며 즉시 승낙했다.
답장을 한 후, 예린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즉시 문자를 삭제했다.
예린은 모든 일을 끝낸 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은수는 식탁 앞에 앉아 그녀가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위층에서 뭘 했길래 이렇게 오래 걸린 거죠?"
"아, 그 옷은 재질이 특수해서 구겨질까 봐 좀 천천히 다루었어요."
예린은 이미 구실을 생각했고 표정은 조금의 티도 보이지 않게 담담하게 대처했다.
은수도 추궁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어르신이 식탁을 두드렸다.
"은수야, 너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 약혼한 이상 앞으로 한 가족이야. 자꾸 예린한테 이렇게 냉담하게 굴지 마."
"괜찮아요, 확실히 제가 좀 꾸물거려서 아버님과 은수 씨를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어서 식사하죠, 자도 배가 고프네요."
예린은 어르신이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듣고 즉시 원활하게 은수를 위해 말했다.
그 말은 아주 타당해서 어르신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얼굴에도 웃음이 많아졌다.
수현 때문에 은수는 줄곧 마음을 닫았고, 성격도 과거에 비해 많이 음울해져서 어르신도 그동안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제 그는 마침내 새로운 감정을 시작하길 원했다. 예린은 비록 집안이 좀 평범하지만 다행히 그동안 줄곧 은수만 따라다녔으니 나름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을 볼 수 있어 그도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