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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결혼 전날이 되어서야 진소희는 비로소 자기 남편이 명문가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밤 강명자는 진소희를 납치해 카드를 건네며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부모의 무덤을 파헤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그녀는 거액의 위자료를 받고 떠났다. 이 일을 계기로 고준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는 가문에서 정해준 정략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일밖에 모르는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3년 후 그는 마침내 정략결혼 상대의 가업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며 고씨 가문의 실세가 되었다. 그제야 그는 더 이상 거리낌 없이 수억 원의 현상금을 걸고 진소희를 찾아 나섰다. 소중한 사람을 되찾은 고준서는 자기 심장을 꺼내 진소희에게 바치고 싶어 할 정도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다. 기네스 기록을 깰 만큼 성대한 결혼식, 나라 하나를 살 정도로 비싼 고가의 다이아몬드 반지, 무릎이 닳도록 빌어서 얻은 사랑의 서약... 물질주의든 신앙이든 그는 오직 그녀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목숨을 걸고 하나씩 해냈다. 결혼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진소희가 임신했지만 아이는 두 달 만에 유산되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던 그녀는 정신을 차렸지만 눈을 뜨고 고준서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의사 친구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야 그녀는 황급히 이불을 거둔 뒤 말리려고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는 순간 그녀는 침대 옆에 꼼짝 못 하고 얼어붙었다. “형, 이 약 이제는 형수님께 드려서는 안 돼. 다음에는 유산하는 거로 끝나지 않을 거야. 평생 임신조차 힘들어지고, 몸까지 망가질 수 있어.” 고준서는 벽에 기대어 서서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유린이에게 약속했어. 평생 민승이 말고는 다른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이건 내가 유린이에게 진 빚이야.” 친구의 표정이 순간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형, 소희 씨가 사라졌던 그 3년 동안 형은 정말 미친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돌아왔는데도, 왜 그저 대체품뿐인 그 여자와 아직도 얽혀 있는 거야. 심지어 그 여자 때문에 형수님께 불임약을 먹였잖아. 추잡한 여자일 뿐인데, 혹시 진짜 사랑하게 된 건 아니지?” 고준서의 눈빛이 깊어졌다. “나는 소희를 사랑해. 하지만 나는 유린이도 포기할 수 없어. 소희는 너무 답답해. 가끔은 다른 맛도 봐야지. 어차피 나는 돈이 넉넉하니까, 한 명쯤 더 부양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어.” “그럼 형수님은 어쩔 건데? 만약 이 사실을 형수님께서 알게 되신다면 반드시 형과 이혼할 거야!” 이혼이란 말에 고준서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소희가 절대 모르게 할 거야. 게다가 내 곁을 떠나지도 못하게 할 거야.” 친구는 고준서를 여전히 설득하고 있었지만 진소희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유린! 내 흉내를 내면서 준서에게 접근했다가 준서의 혐오를 사서 서울에서 쫓겨난 여자잖아! 이미 3년 전에 떠난 거 아니었어? 게다가 준서는 분명히 민승이는 삼촌의 아들이라고 말했었는데, 어떻게 주유린과 준서의 아들이란 말이야?’ 진소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찌푸린 미간에는 충격과 허탈함이 가득했다. ‘그러면 나를 줄곧 속여 왔던 거야?’ 손으로 자신의 배를 무의식적으로 감싼 진소희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스멀스멀 스며 나왔다. ‘그러면 나의 아이는?’ 그녀는 자신도 알아차리기 힘든 왜곡된 울음소리를 들었다.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내 아이는 아빠 손에 죽었어!’ 아이를 잃은 고통이 이제서야 비로소 온몸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는 듯했다. 그 고통은 장기와 오장육부를 죄어 오며 퍼져 나갔다. 그녀가 허리를 굽힌 채 계속되는 헛구역질에 시달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눈물이 끊어진 실타래처럼 툭툭 떨어져 발밑을 적셨다. 그녀는 가슴을 꽉 움켜쥐었지만 뼈를 깎는듯한 고통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병실 밖에서 소리를 들은 고준서는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를 품 안으로 꽉 끌어안았다. “괜찮아, 소희야. 아이는 나중에 다시 가지면 돼. 이러지 마.” 그의 눈물이 그녀의 목덜미에 떨어져 피부를 타고 가슴속을 훑고 내려갔다. 그러나 진소희는 그를 힘껏 밀어냈다. “나한테서 떨어져.” 그녀는 그가 역겹다고 느꼈다. 고준서는 허전하게 남은 품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진소희는 이미 눈을 감고 그를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사랑해 왔던 그 얼굴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낯설고 소름 끼쳤다. 그는 그녀가 떠난 이후 우울증에 시달렸으나 그녀가 돌아오자 또 분리불안증에 시달렸다. 심지어 그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해야 할 정도로 불안해했다. 진소희는 재회한 그날 밤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고준서의 기척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 그의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는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소희야, 울지마. 나는 그저 이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렇게 내 몸을 찔러보고 또 찔러봐도 네가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나 이렇게 그녀를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했던 이 남자는 그녀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고준서가 주유린을 포기할 수 없다면 진소희는 그들을 이루어 주기로 했다. 그날 밤 고준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진소희는 즉시 변호사를 찾아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고는 또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저 준서와 이혼할게요. 돈은 필요 없어요. 그 대신 저를 도와주세요.” 전화 너머에서 강명자는 빈정대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돈밖에 모르는 여자가 돈을 포기하다니. 좋아, 말해봐.” “제가 떠난 후에 준서가 미친 듯이 저를 찾지 않도록, 제 죽음을 가장해 준서가 완전히 포기하게 도와주세요.” 강명자는 몇 초 동안 침묵했다. “좋다. 정말 떠나는 게 좋을 거야. 나를 상대로 장난할 생각이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녀는 장난 같은 것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번만큼은 더 이상 고준서를 사랑할 마음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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