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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마도 진소희의 냉담한 태도를 눈치챘는지 이후 며칠간 고준서는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오로지 그녀에게만 전념했다. 퇴원 당일 그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대여해 벽면을 장미로 정성껏 꾸며놓았다. 차를 운전해 레스토랑으로 향하던 그때 그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고준서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으며 차를 길가에 세운 뒤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에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서 씨, 빨리 와서 저 좀 구해줘요. 임 대표님이 술에 취해 저를 데려가려고 해요. 저... 아!” 전화가 갑자기 끊기자 고준서의 얼굴에 깊은 초조감이 스쳤다.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몸을 기울여 진소희의 안전벨트를 풀더니 그녀 쪽의 차 문을 열었다. “소희야,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들어가 봐야 해. 너 여기서 내려 택시 타고 먼저 레스토랑에 가서 기다려 줄래? 일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 알겠지?” 진소희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오랫동안 고준서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고준서의 눈빛에는 오로지 낯선 의문과 다급한 재촉만 서려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쓰라리게 내려앉은 진소희는 시선을 돌린 뒤 더 이상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준서야, 밖에 비가 와.” 그녀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준서는 순간 깨달은 듯 눈빛에 당혹감이 스치더니 재빨리 외투를 벗었다. “자, 이거 입어. 이사회에서 급하게 재촉하고 있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말을 마치자 그는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더니 곧장 그녀를 떠밀듯 밀어냈다.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손길은 거칠고 단호했다. 진소희가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전에 고준서는 재빨리 액셀을 밟아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그가 그녀를 땅바닥에 넘어뜨린 것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순간 진소희는 땅바닥에 이마를 강하게 부딪쳤으며 지면의 더러운 물은 그녀의 입속으로 스며들었다. 정장 외투가 흠뻑 젖어 있었다. 이 순간 그녀의 마음도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후 그녀는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외투는 줍지 않았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바라보는 눈빛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 표정은 마치 이미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녀의 마음속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는듯했다. 비가 내리는 날은 택시 잡기가 어려웠다. 진소희는 한 시간 비를 맞으며 걸어서 겨우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러나 레스토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예상대로 고준서는 그녀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진소희는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고준서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비가 그쳤다가 다시 내릴 때까지 그 일만 끝내면 바로 온다던 그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시 빗소리가 창가를 두드릴 때 진소희는 종업원을 불렀다. “요리 내오세요.” 종업원은 잠시 망설였다. “고준서 씨께서 아직 오시지 않으셨는데요. 데우면 본연의 맛이 떨어질 수 있어요.” 진소희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으며 입가에 맺힌 미소는 쓴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 사람 오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가장 좋아하던 이 레스토랑의 음식이 오늘은 유독 짜게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도, 이곳에 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유산 직후인 데다가 비까지 맞은 진소희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열이 났다. 의식이 흐릿한 그녀는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이마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병약해진 그녀는 그간의 일들을 잠시 잊은 채 본능적으로 그 손을 꽉 잡았다. 입가에서 흘러나온 고준서라는 이름에 서운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황급히 그 손을 내던졌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조심스럽고 공손한 목소리뿐이었다. “사모님, 저 때문에 깨신 건 아니죠?”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든 진소희는 가정부의 모습을 보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는 목소리가 쉰 듯 떨리고 있었다. “어젯밤에 줄곧 내 곁에 있었어?” “네, 사모님. 대표님께 계속 전화드렸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문자에도 답장이 없으셨고요. 사모님께서 제 손을 꼭 잡고 계시길래... 그냥 떠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다시 한번 대표님께 연락해 볼까요?” 진소희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핸드폰 알림음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대화창을 열어 본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시지는 민승이가 보내왔지만 화면을 가득 채운 수백 장의 사진과 동영상들은 모두 어젯밤 고준서와 주유린의 격렬한 순간들이었다. 현관에서 발코니까지 밤새도록 주유린과 엉켜 있었던 고준서는 진소희에게 한 약속을 잊은 지 오래였다. 심지어 그녀는 어젯밤 자신이 죽더라도 고준서는 돌아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소희는 메시지를 한 번 훑어본 뒤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그녀는 뜨거워진 눈을 감았다. “괜찮아. 택배 좀 가져다줄래?” 그것은 변호사가 작성해 준 이혼 합의서였다. 이제 그녀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명을 마친 후 그녀는 서류를 들고 고준서의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회사 로비에서 주유린을 마주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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