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명분 없는 회장님

두 대의 차량이 회의 장소에서 다시 주숙하던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한 뒤 원아와 주소은은 차에서 내렸다. 호텔 입구에서 동준 비서가 정장 차림으로 회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동준 비서님.” 원아와 주소은은 들어갈 때 동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동준도 원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사했지만 원아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원아가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동준은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문소남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동준의 표정을 읽고 차가운 시선으로 동준을  쳐다보았다. 동준도 눈치채고는 얼른 시선을 돌려 문소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문소남은 호텔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녀를 보고 있었어?”라고 동준에게 차갑게 물었다. 동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덮으려 하면 더욱 드러나는 법이다! 문소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때마침, 이강이 택시에서 내려 노트북을 들고 호텔로 들어가다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회장님과 동준 비서를 보고 인사했다. 문소남은 날카롭게 이강을 훑어보았다. 이강은 “회장님,비서님 안녕하세요,저는 디자인부의 신입 이강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한 뒤 자리를 피했다. 가만히 서 있는 문소남이었지만 지금 그의 몸은 차가운 기운으로 휩싸옇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문소남은 셔츠 단추를 풀고 침대에 누워 잠든 두 아이를 쳐다보면서 스위트룸 앞으로 다가가 와인 한 병을 따서 한 잔 부어서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 깊숙이 흘러 들어갔다. 얼마 안 되어 두 아이는 잠에서 깼다. 오빠는 먼저 일어나 세수하고 나서 여동생을 도와 공주 치마를 찾아주었다. “오빠야, 아빠 왜 저래?”라며 오빠에게 살며시 물었다. 오빠는 고개를 저으며 무슨 일인지 몰랐다.그는 “어른들 일은 우리가 몰라도 돼.”라며 동생에게 말했다. …… 아래층에서는 이강이 손에 들었던 가방을 내려놓고 원아를 껴안았다. “왜 그래.”원아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면서 말했다. 사귄 지는 1년이 지났지만 둘 사이에 친밀한 스킨십은 드물었다. 원아의 마음속에 상처가 있었고 또한 이강이 그녀를 존중했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괜찮아,너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안고 싶어.”라며 이강이 피곤해 하면서 말했다. 원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 저녁을 먹고나서 이강은 급히 나오다 보니 갈아입을 옷이 없다면서 원아랑 쇼핑하러 가자고 했다. 옷을 사고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9시 반이 넘었다. “방 하나 열어주세요.”이강은 주민등록증을 내밀면서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건넸다. 원아가 옆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직원은 확인하고 나서 고개를 들고“죄송합니다만, 아직 빈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강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다가 한쪽에 있는 원아를 바라보았다. 이강은 원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돌아가면서“아니면, 오늘 저녁엔 한방에서 지내면 어때? 네가 침대에서 자고, 나는 소파에서 잘게.”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원아를 보고 이강이 말했다. “내가 너의 남자친구잖아, 5년 동안 함께 지내왔는데 혹시 나를 못 믿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실망과 슬픔이 가득 차있는 것을 본 원아는 갑자기 죄책감을 느꼈다. 5년 동안 이강은 모든 것을 떠나 그녀를 잘 보살폈고 다른 남자들처럼 목적을 두고 접근하지 않았으며 그녀를 매우 아껴왔다. 이런 그에게 상처를 줄까 봐“그래 그럼, 니가 소파에서 자.”라고 그녀는 말했다. …… 같은 시간, 스위트룸 식당에서는 문소남의 세 식구가 밥을 먹고 있었다. 치킨을 끌어안고 뜯어먹던 원원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아마도 울면서 치킨을 먹겠다고 떼를 쓴 것 같았다. 갑자기 사장에게 불려온 동준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까 디자인팀 신입사원이 방이 예약되어 있어?”문소남은 냉정한 말투로 동준이한테 물었다. 동준은 회장님이 왜 디자인부의 신입한테 관심을 갖는지 몰랐지만 “아니요, 호텔에는 빈 방이 없어요, 아마도 여자친구와 같은 방을 쓸 거예요.”라고 사실대로 말하고는 회장의 눈에서 불쾌하다는 표정을 읽었다. 동준은 항상 눈치를 잘 살피지만 회장님의 눈치는 쉽게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한참을 생각한 동준은 원아를 다시 생각했다. 치킨을 먹고 난 원원이는 입을 삐죽 대면서 말했다. “나는 나쁜 아빠랑 같이 안 있을래!” “투정 부리지 마.”라며 오빠가 동생에게 말했다. “나쁜 아빠, 나쁜 아빠, 나쁜 오빠, 나쁜 오빠, 흥…”하고 두덜거렸다. 동준은 회장님의 눈치를 보면서 원원이에게 말했다.“동준 삼촌이 랑 어제같이 놀던 아줌마한테 갈래?” 원원이는 바로 의자에서 내려와 동준의 손을 잡고는 아줌마 찾으러 가자고 앞섰다. 동준은 말없이 앉아있는 회장님을 보더니 원원이를 이끌고 식당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아의 방으로 향했다. 동준이 원아의 방에 도착하기도 전에 회장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동준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한밤중에 졸리고 피곤했던 주소은은 차안에서 원아에게“신 국장의 딸이 재수 없나 봐요. 회장님은 대체 왜 우리 보고 한밤중에 A 시로 돌아가라고 했을까요? 인간성도 없는 변태 같아요! 호텔 방값을 다 냈는데도 말이에요, 우리가 밤길을 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은가봐요?!”라고 말했다. 원아도 마음이 피곤했고 회장님의 속셈을 종잡을 수 없었다. 이강은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김훈이 운전하고 있었다. H 시 호텔, 문소남은 호텔 테라스에 홀로 서서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그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와 거래했던 사람들은 모두 문소남이 약점이 없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방금 방에서 몇 잔을 마셔서인지 와인의 자극이 그를 약간 취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5년 전 그녀와 한 침대에서 뒹굴던 나날들을 떠올렸고 어젯밤 그녀의 반항도 떠올리면서 문소남은 자신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숙여 담배를 꺼버렸다. 다음날 아침. 동준은 회장님 가족과 함께 H 시 국제공항에 나갔다. 문소남의 얼굴은 시종 어두웠다. 뒤따라오던 동준은 “비록 대단한 회장님이라 하셔도 두 사람이 한방에서 지내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도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명분도 없고, 오지랖만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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