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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밤 아홉 시... 한가을이 흉악범에게 붙잡혀 골목 안으로 끌려 들어가던 그 시각, 배성빈은 연인과 함께 드론 쇼를 보고 있었다. 밤 아홉 시 십 분... 한가을은 무참히 폭행당하며 바닥에 짓밟히고 있었고 배성빈은 연인에게 달콤한 사랑 고백을 속삭이고 있었다. 밤 열 시... 한가을은 칼에 수차례 찔린 채 숨을 거두었고 악취 나는 하수구에 버려졌다. 그 시간에도 배성빈은 연인과 끝없는 정사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밤 열두 시... 죽었다가 살아난 한가을은 집으로 돌아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배성빈과 현관에서 마주쳤다. 배성빈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너... 어쩌다 이렇게 됐어?” 지금의 한가을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옷은 여기저기 찢긴 채였다. 피부 곳곳에는 선명한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고 눈가는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성빈아, 우리... 이혼하자.” 반듯하던 배성빈의 눈썹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한가을, 이까짓 일로 이혼까지 꺼내겠다는 거야?” 한가을은 무표정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우리 이혼하자.” 배성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가을에게 다가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가을아. 오늘 중간에 차에서 내리게 한 건 내가 좀 심했어. 그래도 네가 괜히 혼자 예민하게 굴었던 건 사실이잖아.” 그는 마치 이 모든 일이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은주는 그냥 재미로 만나는 거야. 배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오직 너야. 누가 감히 넘볼 수 있겠어?” 이미 씻고 나왔음에도 배성빈의 몸에서는 여자의 향수가 희미하게 배어 나왔다. 그 냄새는 가시처럼 한가을의 심장에 한 치 한 치 파고들었다. 어젯밤, 그녀는 배성빈의 외도를 직접 목격했다. 더 우스운 건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자신이 7년 동안 후원해 온 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일로 두 사람은 차 안에서 크게 다퉜고 배성빈은 분노에 일부러 외진 곳에 차를 세운 뒤 한가을을 길가에 내려놓고 떠나버렸다. 그 이후... 비극이 벌어졌다. ... 한가을이 죽은 뒤, 그녀의 영혼은 저승으로 끌려갔다. 염라대왕은 생전에 쌓은 공덕을 이유로 그녀에게 7일간의 환혼을 허락했다. 지금 한가을의 유일한 소원은 배성빈과 이혼하는 것, 단 하나뿐이었다. 가슴은 이미 더 아플 수 없을 만큼 무뎌졌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열여덟 살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분명히 말했어. 언젠가 네가 나를 배신한다면 나는 미련 없이 떠나겠다고. 그때 너도 이건 원칙의 문제라며 알았다고 했잖아.” 살해당하던 순간 범인은 그녀를 열여덟 번이나 찔렀다. 그 칼자국 하나하나는 열여덟 살에 품었던 그녀의 순진함을 조롱하는 듯했다. 배성빈은 인내심을 잃은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슨 원칙 타령이야. 어렸을 때 한 말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재벌가 자식들 중에 애인 안 두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난 그래도 널 충분히 배려해 왔잖아. 이렇게 오랫동안 너 하나만 지켜왔고.”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마치 당연한 진실이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덧붙였다.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은주는 그냥 새로워서 만난 거고. 잠깐 육체적으로 도망칠 기회쯤은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한가을은 실망이 짙게 깃든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만약 내가 이미 죽었다고 하면... 네가 믿을까? 뭐, 상관없어. 지금 내 소원은 너랑 이혼하는 것뿐이야.” 배성빈은 기가 막힌다는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 “한가을, 너 이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날 속여야겠어?” “나...” 한가을이 말을 잇기도 전에 침실 문이 열리며 김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밀착된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드러난 피부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한가을의 시선이 김은주에게 꽂히자 그녀는 서둘러 배성빈의 등 뒤로 숨었다. “가을 언니... 성빈 오빠를 좋아한 건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빠처럼 높은 분이 애인 하나쯤 두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김은주는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언니예요. 저는 배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넘볼 생각 정말 없어요.” 한가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침실 안으로 옮겼다. 어제 아침, 그녀가 직접 정리해 두었던 침대는 지금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데는 재주가 있네.” 김은주는 한가을의 돈으로 살면서 그녀의 남편과 같은 침대에 누웠다. 심지어 지금 입고 있는 잠옷조차도 모두 한가을의 것이었다. 김은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을 언니...” “그만해.” 배성빈이 짜증을 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서로 좀 진정하자.” 그는 김은주의 손을 잡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한가을은 모든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면 벽에 걸린 그녀와 배성빈의 결혼사진 속 두 사람은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한가을은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멍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그토록 사랑하던 배성빈은 언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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