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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날 밤, 배성빈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가을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피부가 벗겨질 만큼 여러 번, 또 여러 번 몸을 문질렀다. 더럽혀진 흔적을 어떻게든 지워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살갗에서 피가 배어 나와도 어젯밤의 기억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한가을은 결국 울다 지쳐 정신을 잃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안아 올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가을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끈질기게 그녀를 불렀다. 한가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언제 돌아왔는지 배성빈이 눈앞에 서 있었다. 늘 차갑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당황과 불안이 서려 있었다. “가을아, 잠들면 안 돼. 좀만 참아, 우리 병원 가자.” 그를 바라보는 한가을의 시야가 점점 아득해졌다.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흐려지며 기억이 겹치듯 떠올랐다. 열여덟 살, 대지진이 일어났던 그해였다. 교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 배성빈은 자신의 목숨을 뒤로한 채 그녀를 끌어안고 몸으로 감싸안았다. 그들은 폐허 속에 닷새 동안 갇혀 있었다.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한 한가을은 환각에 시달리며 살아갈 의지를 서서히 잃어갔다. 그때도 배성빈은 그녀가 잠들 것 같을 때마다 이름을 끈질기게 불렀다. 그렇게 기적처럼 구조된 뒤 그들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 시절의 한가을은 배성빈과 이미 삶과 죽음을 함께 건너왔으니 앞으로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무너지는 데에는 결혼 3년이면 충분했다. ...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한가을이 일어나자마자 본 것은 침대 옆에 엎드린 채 잠든 배성빈이었다. 그는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였고 한숨도 자지 못한 듯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배성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 순간 배성빈은 놀란 듯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멍하니 한가을을 바라보던 그는 마치 놓칠까 두려운 사람처럼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가을아... 나 어젯밤에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네가 아무 일도 없어서...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리고 미안해, 어제는 내가 너무 심했어.” 아침이 되어 집에 돌아온 그는 욕조 안에 누워 있는 한가을을 발견했다. 눈은 꼭 감긴 채였고 숨이 멎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 게다가 차가운 물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배성빈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한가을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흐느끼며 그를 밀어내고 담담히 말했다. “성빈아... 우리 한 번만 제대로 얘기해 볼 수 있을까?” 배성빈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얘기하자. 그러니까 다시는 이런 짓 다시 하지 마. 알겠지?” “사실 어젯밤에 나는...” 그때 배성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화면을 한 번 힐끗 보더니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가을아, 계속 말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가을의 시선은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 속 ‘울 아기’라는 이름에 꽂혔다. 순간 그녀의 몸을 지탱하던 힘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괜찮아, 받아. 난 좀 피곤해서 쉬고 싶어.” 더는 그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한가을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누웠다. 배성빈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병실을 나갔다. 잠시 후 한가을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올 수 있어요?] 한가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무시하려 했지만 그녀의 몸은 의지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 지하 주차장. 김은주는 배성빈의 소매를 붙잡은 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끼고 있었다. “이 아이... 낳으면 안 될까요? 우리 첫 아이잖아요. 저 지우고 싶지 않아요.” 배성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냉정하게 말했다. “나랑 가을이는 아직 아이가 없어. 그런데 네가 먼저 임신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가을이랑 내가 아이를 가진 다음이라면 그때 네가 몇 명을 낳든 상관없어.” 김은주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낙태는 너무 아프대요. 전 그런 거 못 해요. 그리고 오빠가 저랑 처음 잤을 때 분명히 책임진다고 말했잖아요.” 배성빈은 지친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 끝나고 나면 불편한 거 없게 해줄게. 집이든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김은주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럼 저한테도 프러포즈해 줘요. 진짜 아내는 못 돼도 괜찮아요. 가짜라도... 한 번쯤은 받아보고 싶어요.” 배성빈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인상을 찌푸리자 김은주는 입술을 삐죽였다. “봐요, 또 약속 안 지키잖아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알았어... 해줄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은주는 거짓말처럼 눈물을 뚝 멈췄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의 서러움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반지도, 웨딩드레스도 가을 언니가 했던 거랑 똑같이 할래요.” “그래, 알았어.” 잠깐의 침묵 뒤 김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저도 에테르나 궁에 가 보고 싶어요.” “네가 원하는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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