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한가을은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약혼자는 교포야. 엄마 친구분이 소개해 주셨어. 집안도 잘 맞고... 곧 결혼할 거야.”
배성빈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네 말 들어보니까 감정적인 기반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있든 없든 그게 뭐가 중요해. 있다고 해도... 결국 다 거기서 거기더라.”
그 말에 배성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길게 늘어진 침묵 끝에 그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그럼, 행복해.”
“너도.”
한가을은 예의를 지키되 선을 긋는 미소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홀로 남겨진 배성빈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제 한가을과 배성빈 사이에는 그 어떤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가을은 길가에서 낯익으면서도 낯선 얼굴을 발견했다.
수척해진 얼굴의 여자가 색이 바랜 옷차림으로 마트 아주머니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곁에는 어린아이 둘이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매달려 있었다.
김은주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어려운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다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지만 한가을은 더 이상 그 장면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자 그녀는 차를 몰아 그 자리를 떠났다.
과거는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한가을은 다시는 배성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계약 자리에서도 그의 이름 대신 다른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것을 배성빈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한가을의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늦가을의 햇살 아래, 단풍은 유난히도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식이 모두 끝난 뒤 한가을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배성빈이 거액의 축의금과 함께 특별한 선물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정교한 상자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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