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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화려한 에테르나 궁 안에는 바이올린 선율이 잔잔히 흘렀다. 귀여운 아이들이 꽃잎을 흩뿌리며 축복을 건네는 장면은 성대하고도 로맨틱했다. ... 한가을이 먼 길을 달려 도착했을 때, 마침 배성빈은 프러포즈 반지를 손에 든 채 김은주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은주야, 나랑 결혼해 줄래?” 그의 부드러운 눈빛에 한가을은 문득 삼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배성빈은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다만 그 눈에는 미처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김은주가 입은 웨딩드레스의 치맛자락이 길게 늘어져 조명 아래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네, 좋아요.” 한가을은 무심코 김은주의 드레스 디자인을 바라보다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불과 며칠 만에 배성빈이 자신이 입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다시 만들어 내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소중히 간직해 온 추억이 성빈이 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 신부라는 자리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던 걸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손에 들고 있던 이혼 합의서가 담긴 봉투도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미미한 소리는 축복과 환호 속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배성빈은 김은주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한가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녀는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 “배성빈!”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배성빈은 초췌해진 한가을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김은주를 밀쳐냈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며 냉정을 되찾았다. “넌 왜 왔어?” 한가을은 흐르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며 스스로를 비웃듯 웃었다. “축하하러 왔어. 그리고... 이것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이혼 합의서를 내밀었다. “우리 이혼해야지.” “말했잖아, 여섯째 날에 이혼한다고. 아직 시간 안 됐어.” 한가을은 그의 소매를 붙잡고 매달렸다. “제발... 우리 서로 놓아주자. 너는 그냥 사인만 하면 돼.” 그녀의 눈은 충혈돼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칼은 창백한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다. 배성빈은 한가을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한가을, 네가 나랑 조건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 순간 김은주는 배성빈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마치 승자라도 된 듯 한가을을 내려다보았다. “가을 언니, 오빠랑 이미 약속도 했잖아요. 남은 시간 몇 시간 안 되는데 왜 꼭 오늘이어야 해요? 혹시... 성빈 오빠가 저한테 프러포즈한 게 질투 나서 그러는 거예요?” 배성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갑게 말했다. “얘랑 말 섞을 필요 없어.” 한가을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배성빈... 오늘은 정말로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날이야. 너 속이려는 거 아니야. 나 정말로...” “그만해! 같은 말을 내가 몇 번이나 더 해야 해? 이런 거짓말이 제일 유치하다는 거 몰라? 네가 죽었다고? 증거는? 죽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올 수 있어? 또 이런 말로 날 속이려 하면 널 정신병원에 보내 버릴 거야. 이번 생에는 다시는 나올 수 없게.” 그 순간 한가을의 머릿속에서 ‘이성’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끈이 끊어졌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배성빈!! 이렇게 나 괴롭히는 게 재밌어? 왜 날 좀 놓아주질 못해? 난 네 손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쓰레기 같아. 버릴 듯 말 듯 끝까지 안 버리면서! 넌 김은주랑 그냥 놀 뿐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뭐 해? 이건 프러포즈잖아! 도대체 왜... 왜... 날 놓아주질 않는 건데!” 한가을은 펑펑 울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난 거짓말 안 했어... 그날 밤, 난... 열여덟 번이나 찔렸어. 너무 아팠어... 정말로...”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 배성빈의 심장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날카롭게 저려 왔다. 눈가가 붉게 물든 그는 끝내 참지 못하고 한가을을 끌어올렸다. “나가서 얘기해.” 김은주는 다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오빠,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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