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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하루 내내 정서연은 녹초가 된 몸을 붙잡고 진료를 봤다. 겨우 퇴근 시간까지 버틴 뒤 간단히 뭔가를 먹고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깊은 잠에 빠진 덕에 해 질 녘 울린 휴대전화 진동도 알아채지 못했다. 저택. 최재현은 연결되지 않는 번호를 한참 노려보다가 얼굴이 시커멓게 굳었다. “아빠, 오늘 이모 데리러 가기로 했잖아요.” 밝은 눈을 반짝이던 최예준이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이모가 방금 전화했는데, 오늘 밤 저랑 같이 자준대요.” 정수아는 그녀가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하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정서연은 독립심을 길러야 한다며 억지로 혼자 재우려고 했다. 최재현은 욱신거리는 위를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일 얘기하자.” 그리고 부엌에 있는 도우미를 향해 말했다. “아줌마, 위장약이랑 미지근한 물 좀 가져다줘요.” 도우미는 하던 일을 내려두고 약상자를 들고 왔지만 한참 뒤져도 진통제만 나왔다. “지난번에 유통기한 지난 위장약 다 버린 뒤로는 새로 들여놓은 게 없어요. 사모님께서 식사를 관리하신 뒤로 위염이 없으셨잖아요.” 최재현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언성을 높였다. “그걸 지금 왜 말해요? 없으면 사 오면 될 거 아니에요?” 도우미는 일어서며 나가기 전 최예준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오늘 밤 도련님 목욕도 시켜야 하는데, 저는 약국에 들렀다가 오면 조금 늦을 것 같아요.” “하루쯤 안 씻어도 돼요.” 최재현은 위를 누르던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통증이 더 심해졌다. 도우미가 나가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진통제를 집어삼켰다. 정서연이 없으니 이럴 때 진통제를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약을 삼킨 뒤에야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목욕을 면하게 된 최예준은 신이 나 있었지만, 아빠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레 다가왔다. “아빠, 배 많이 아파요?” 소파에서 벌떡 내려온 최예준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왔다. “이모가 그러는데, 아플 때는 차가운 걸 대 주면 낫는대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예요!” 몸을 웅크린 최재현은 최예준의 말을 들을 겨를조차 없었다. 정서연의 밥을 하루 못 먹었을 뿐인데 몸이 이렇게 반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예준은 아빠가 몸을 벌벌 떨 정도로 아파하자 도우미가 약을 사러 간 게 떠올라 용기를 북돋웠다. “아빠, 조금만 참아요! 아줌마가 오면 바로 약 먹을 수 있어요!” 손에 든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 최예준은 혀끝으로 핥았다. 달콤했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에게 양귀비 같다더니 금세 한 통을 다 먹어 버렸다. 도우미가 돌아왔을 때, 거실 소파에는 크고 작은 두 사람이 각각 웅크려 있었다. 한 사람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울면서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도우미는 깜짝 놀라 바로 응급 전화를 걸었다. 겨우 한 시간 비운 사이 집안이 난장판이 되다니 말이다. 아니, 정서연이 집을 비운 뒤로 두 사람의 생활 습관이 완전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곧 구급차가 거의 기절 직전인 부자를 병원으로 실어 갔다. 숙소. 정서연은 깊은 잠을 자다가 휴대폰 진동에 화들짝 깼다. 비몽사몽 전화를 받자 당직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아, 응급실로 좀 빨리 와 줘!” 동료가 이토록 급하니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생긴 줄 알았다. 정서연은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에 살기에 전화를 끊자마자 옷을 주워 입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는 어른 하나, 아이 하나가 치료를 받고 안정을 찾은 뒤 각각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 당직실에 들어선 정서연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당직 의사 유지안이 맞은편 병실을 가리켰다. “급성 위장염 환자 두 명.” 정서연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렇게 큰 일은 아니네?” “네 아들이랑 네 남편 말이야.” 유지안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숙소에만 있지 말고 가족이랑도 좀 연락하지 그래? 병원 온 것도 몰랐어?” 정서연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둘 다 위장염이라고?” “데려온 도우미 말로는 네 남편은 원래 위가 안 좋은 데다가 진통제까지 삼켰고, 애는 아이스크림을 한 통 다 퍼먹었다더라...” 끝까지 들을 것도 없이, 정서연은 곧장 소아병동으로 향했다. 최재현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최예준은 열 달 품어 낳은 아이였다. 아무리 실망해도 아픈 아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마음이 저렸다. 침대 위의 작은 최예준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곁에서 간호하던 도우미가 그녀를 보고 인사했다. “사모님, 오셨어요.” 정서연은 도우미의 손에서 젖은 수건을 받아 들며 말했다. “제가 할게요.” 땀으로 흠뻑 젖은 최예준의 떨리는 몸을 조심스레 닦아 주며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도우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모님, 어서 돌아오세요. 사모님이 안 계시니까 대표님하고 예준이가 밖에서 사 먹다가 이 모양이 됐잖아요...” 그 말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지만, 최예준의 미약한 중얼거림이 들리자 몸을 숙여 귀를 가까이 댔다. “엄마 여기 있어, 예준아. 무서워하지 마.” “이모, 배가 너무 아파...” 정서연은 순간 몸이 굳어 쓴웃음이 흘렀다. 아들이 그래도 힘들 때는 자신을 찾으리라 믿었건만, 이미 마음속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지워 버린 듯했다. 그녀는 말없이 최예준의 몸을 다 닦아 준 뒤 직접 체온을 재고서야 도우미를 바라봤다. “식단표 줄 테니 예준이 나을 때까지 그대로 먹여 줘요.” 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사모님, 언제 집에 돌아오세요?” “안 돌아가요.” 손을 닦고 문가로 걸어가다 침대에서 한결 편해 보이는 아들을 다시 돌아봤다. “문제 있으면 바로 전화해요.” 도우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문을 닫고 막 나가려는 찰나, 차갑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예준이가 아픈데도 집에 안 들어올 거야?” 책망 섞인 말에 돌아선 정서연은 무심히 최재현을 바라봤다. “아이 돌보는 건 내 몫만 아니야. 아빠인 네가 제대로 못 챙겨 놓고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 있어?” 단호한 한마디에 최재현은 굳어 버렸다. 아이의 문제로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다 네가 토라진 탓에 그런 거잖아.” 창백한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다. “이렇게 나올 거면 영영 집에 들어오지 마!” 정서연은 냉소를 흘렸다. “이혼협의서에 도장만 찍으면 네 소원 바로 이루어질 텐데?” “너...” 이를 악문 최재현이 말을 잇지 못한 순간 달콤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언니, 재현 오빠가 이렇게 아픈데 아내가 돼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오빠라고 예준이가 아프길 바랐겠어?” 정수아가 최재현 곁으로 다가와 그를 부축하며 걱정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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