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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과일을 깎던 정서연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믿으세요? 그런 헛소문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랑 재현 씨 사이엔 아이까지 있는데 그렇게 쉽게 이혼하겠어요?” 정서연의 다정한 말에 노인은 비로소 안심한 듯했다. “그래야지.” 노인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도 있잖아. 너희 둘은 워낙 착한 아이들이니 날 걱정시킬 일은 없겠지.” 그러더니 그는 농담조로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만약 그 녀석이 널 괴롭히면 나한테 꼭 말해야 한다. 네가 직접 말하기 어렵다면 내가 대신 나서서 혼내줄 테니까.” 정서연은 과일을 정성껏 자르고 조각마다 이쑤시개를 꽂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요, 절대 할아버지께 숨기는 일 없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마음이 편치 않아 노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병실엔 옅은 소독약 냄새가 감돌았지만 창가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은 조용하고 따스했다. 노인의 기력이 좋은 편이라 낮잠을 자지 않았고 두 사람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고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를 든 박경희가 들어왔다. 그녀는 정서연을 보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르신, 건강은 좀 어떠세요? 입원하셨다는 소식은 일찍 들었는데 집안일이 너무 바빠서 이제야 찾아왔어요.” 그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덧붙였다. “서연아, 네가 병원에 자주 있으니 어르신 잘 돌봐 드려. 어르신께서 너를 얼마나 아껴주셨는데, 바쁘다고 소홀히 하면 안 돼.” 그 말에 정서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노인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다독이듯 잡고 손등을 토닥였다. “서연이 참 좋은 아이야.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게 나를 챙겨주지. 친손녀 같다니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런 말 하니 내가 다 서운하네.” 노인이 정서연을 대놓고 감싸주자 박경희 얼굴에 걸린 미소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럼 다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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