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노인의 말이 점점 더 가시 돋친 듯 날카로워지자 정수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할아버지, 식재료는 제가 전부 새로 사서 준비한 거예요. 절대 탈이 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나 노인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새로운 것도 흥미를 잃으면 그만이야. 결국 오래도록 남는 건 세월이 흐르며 깊어지는 정이야.”
의미심장한 노인의 한마디가 정수아의 자존심을 깊이 후벼 팠고 그녀는 울컥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 모습을 본 최재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노인을 바라봤다.
“할아버지, 말씀이 좀 지나치세요.”
“지나쳐? 내가?”
노인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내가 너한테 어릴 때부터 얼마나 강조했냐?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책임지라고. 중간에 딴마음 먹지 말라고 말이야.”
정수아가 병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노인의 독설은 멈추지 않았다. 최재현의 보호조차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정수아의 자존심만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정수아는 입술을 더욱 세게 깨물며 탁자 위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봤다.
‘이 늙은이, 정말 쉽지 않네.'
최씨 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늘 정서연 편이었다. 정수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눈 속에는 깊은 원망이 서렸다.
“할아버지, 그냥 한 끼 식사일 뿐이에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면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
최재현은 침대 옆에서 차분히 노인을 달랬지만 노인은 손자를 빤히 바라보며 가볍게 꾸짖었다.
“내가 이걸 먹어서 얻는 게 뭐냐? 어제 서연이는 나를 달래주면서 같이 낚시 가자고 약속까지 했단 말이다.”
‘얻는 게 뭐냐고?'
정수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 노인의 눈에는 모든 게 결국 정서연으로 통했다. 자신이 언니보다 못하다면 굳이 더 이 노인을 만족시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재현이 계속해서 노인을 달래는 사이 그녀는 다가가 아쉬운 듯 도시락통을 천천히 닫았다.
“재현 오빠, 할아버지께서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나중에 할아버지 생각이 바뀌시면 다시 준비해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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