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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한 치의 농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최병문의 표정을 보고 최재현은 잠시 멈칫했다. “고작 이 일로 절 부르신 겁니까?” “고작이라니? 내가 곧 죽게 생겨야만 너를 부를 수 있다는 거냐?” 최병문의 언성이 높아지자, 최재현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침에 본가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분명 멀쩡하셨는데... 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거지?’ 그는 무심결에 정서연을 바라봤다. 눈빛에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정서연이 나서서 해명하려던 찰나, 최병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늙은이랑 얘기 중인데, 왜 애먼 서연이를 쳐다봐? 서연이가 널 도와서 뭐라도 감춰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최병문의 날 선 말에 최재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회사로 오시면 직접 보실 수 있잖아요. 아니면 제가 오늘 본가에 복사본 가져다드리죠. 여긴 병원이라... 당장 전부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말하기 어렵다고? 솔직히 말 못 하겠다는 거 아니고?” 최병문은 콧방귀를 뀌듯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직접 키운 후계자라는 놈이 도대체 얼마나 거창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길래, 두 마디로 설명도 못 하냐?” 그의 말에 가시가 돋쳐있다는 것을 눈치챈 최재현의 얼굴도 점점 굳어졌다. “도대체 뭘 알고 싶으신 건데요. 그렇게 돌려 말하지 마시고 그냥 말씀하세요.” “좋아.” 최병문은 곁에 앉은 정서연의 손을 단단히 붙잡은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최재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럼 나도 돌려 말 안 하지. 병원이랑 진행 중이라는 그 프로젝트, 그거 이사회 승인 받았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재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정서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서연!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네가 하고 있는 거야, 이놈아!” 최병문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휠체어 팔걸이를 거세게 내리쳤다. “서연이는 내 앞에서 거짓말한 적 없어. 내 앞에서 그런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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