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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임씨 저택. 늦은 오후, 박아윤은 임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기도 전, 안에서 김하정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와 분노가 터져 나왔다. “저런 촌뜨기가 우리 집에서 애지중지 자라왔고 정작 친딸인 우리 지효는 시골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데 당신은 왜 아직도 쟤를 여기 남겨두려는 거예요? 지효랑 나랑 역겹게 할 속셈이에요? 똑똑히 들어요! 난 이제 쟤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역겨우니까 계속 이 집에 남겨둘 거면 지금 당장 지효 데리고 나갈래요!” 임진석이 나직이 변명했다. “그래도 아윤이는 우리가 20년을 키운 아이잖아. 갑자기 시골로 돌려보내면 어떻게 적응하라고 그래?” “20년 동안 지효 인생 빼앗아서 산 애예요. 이제 그만 돌아가서 본인 인생이자 가난한 삶을 사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죠?” 오늘 임씨 가문의 차는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공용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온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검은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땀에 젖은 작은 손은 시종일관 상자 하나를 꽉 쥐고 있었다. 박아윤은 임씨 가문에서 20년을 자랐다. 며칠 전, 지효라는 여자아이가 갑자기 찾아와 대성통곡하며 자신이 임씨 가문의 친딸이라고 주장했다. 김하정은 즉시 두 사람에게 친자확인 검사를 의뢰했고, 결과는 지효가 임씨 가문의 친딸이라고 나왔다... 또한 박아윤은 임씨 가문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녀의 친부모가 박씨 성이라고 하니 임씨 가문에서 그녀에게 박아윤으로 개명하라고 강요했다. 박씨 가문은 인근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지냈다. 임지효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부모는 평생 그 산을 벗어나 본 적도 없고 그녀가 학교 다니는 것조차 뒷바라지할 돈이 없다고 했다. 아마 그녀를 데리러 올 돈도 없을 터였다. 박아윤은 이제 자신의 진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기차표를 사 두었고 오늘은 임진석과 김하정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뿐인데 뜻밖에도 김하정은 그녀가 눌러앉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안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박아윤은 급히 문손잡이를 내리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다만 임진석이 문을 열고 나오며 눈가에 죄책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윤아... 엄마 너무 미워하진 마. 지효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야.” 박아윤은 고개를 내젓고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에 미소가 어렸다. “네, 엄마... 아니, 아줌마랑 아저씨께 작별 인사드리러 왔어요.” 그녀는 손에 든 상자를 임진석에게 건넸다. “이건 아줌마 생일 선물이에요. 저는 들어가지 않을게요. 대신 꼭 전해주세요.” 오늘은 김하정의 생일이지만 가족들이 너무 정신없다 보니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임진석은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20년을 키운 딸이 갑자기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 아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임지효가 친딸이니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 임진석은 상자를 받아들고 지갑에서 두툼한 돈다발을 꺼내 박아윤에게 건넸다. “거기 가서 생활이 어려울 테니 이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어. 혹시 또 부족하면 언제든 아빠에게 전화하렴.” 박아윤은 돈을 받지 않고 임진석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임진석을 바라보다가 저도 몰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저씨는 환절기만 되면 기침하시잖아요. 담배 좀 줄이세요. 방 서랍에 목캔디 넣어뒀으니 꼭 챙겨 드세요.” 그녀는 미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임씨 가문 또한 그녀와 앞으로 어떠한 관계도 맺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낡은 배낭 하나만 멨는데 납작한 걸 보니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떠나가는 뒷모습마저 야위고 앙상해 보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단호함이 느껴졌다. 임진석은 빨개진 눈시울로 그녀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곧이어 상자를 김하정에게 건넸다. 하지만 김하정은 되받아치듯 상자를 던져버렸다.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던 상자가 열리자 초록색 옥에 박힌 다이아몬드 테두리의 일부가 드러났다. 딱 봐도 값비싼 액세서리였다. 박아윤은 아직 졸업도 못 했는데 어떻게 이런 물건을 살 수 있을까? 김하정은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 “용 쓰네 정말! 우리 집 돈으로 이런 거 사서 나한테 생색내려고? 시골 내려가면 너무 힘드니까 우리 동정심 사서 여기 눌러앉을 속셈이잖아요.” 임진석은 속절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윤이 이미 갔어.” 감하정은 못 믿겠다는 듯, 심지어 달갑지 않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라고요? 그냥 갔어요?” 임진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임지효가 냉큼 그녀의 팔을 잡고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언니도 엄마한테 그렇게 화내며 떠나진 않았을 거잖아요.” “저의 몇몇 오빠들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양부모님은 아들만 편애하세요. 전에 제가 벌었던 돈을 다 집에 드렸지만 항상 부족하댔어요. 아윤 언니는 호강하며 자랐으니 박씨 가문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해요. 언니를 다시 데려오는 건 어떨까요? 제가 언니랑 한번 잘 지내볼게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임지효를 보고 있자니 김하정은 순간 심장을 쿡 찌르듯 아팠다. 박아윤이 여태껏 이 집안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동안, 임지효는 시골에서 고생하며 온 가족을 먹여 살렸겠지.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김하정은 박아윤에게 오직 원망만 느꼈다. “바보야,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아윤이는 배은망덕한 년이야. 절대 우리 지효처럼 마음씨 착한 아이가 아니지.” “잘 갔어! 배짱 있으면 평생 돌아오지 말라 그래!” 임지효는 김하정의 품에 기대 눈 밑에 질투와 증오가 번뜩였다. 그녀는 박아윤의 요염한 얼굴이 정말 싫었다. 분명 자신이야말로 임씨 가문의 친딸인데 박아윤 앞에 서면 언제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박아윤이 그녀의 삶을 훔쳐서 살았기 때문이다! 임지효는 이런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박아윤이 떠나야만 더 이상 두 사람을 비교하는 일도 없을 테고 그녀는 비로소 임씨 가문의 진정한 공주님이 될 것이다. 그 시각, 임씨 저택에서 멀지 않은 길목. 허름한 차 몇 대가 멈춰 섰고 큰 키에 긴 다리를 뽐내는 훤칠한 남자 세 명이 각자 차에서 내렸다. 임씨 저택 입구에는 한 소녀가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이 세 명은 바로 박씨 가문의 그 빈둥거리는 오빠들이었다. 서로 닮은 얼굴에 모두 피곤함이 역력했다. 셋째 오빠 박서준의 옷만 비교적 깔끔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꼬깃꼬깃한 상태였다. 특히 둘째 오빠 박동하는 방진복까지 그대로 입고 있는 게 전형적인 공장 노동자의 옷차림이었다. 그들도 이제 막 알아챘다. 임지효가 박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자마자 스스로 몰래 성을 바꾸고 경운시로 돌아가 친부모를 만난 일을. 그들의 친동생은 임씨 가문의 임아윤, 아니, 지금은 박아윤이라고 불려야 할 그녀였다. 오늘은 부모님의 분부대로 직접 그녀를 데리러 왔다. “형, 쟤 백퍼 아윤이야. 얼굴 좀 봐. 나랑 똑같이 생겼잖아.” 셋째 오빠 박서준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큰오빠 박정우는 박아윤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임씨 가문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큰 별장에서 지내면서 차 한 대 보내주지 않는 거야?” 박동하가 코웃음을 치며 싸늘한 눈빛으로 변했다. “어떻게 되긴? 친딸이 아닌 걸 알게 됐으니 나 몰라라 하는 거지. 임지효 걔 분명 우리 집이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했을 거야. 그래서 아윤이도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안 돌아온 거잖아. 이거면 얘기 다 끝난 거 아닌가?” 그는 실험을 마치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는 박아윤을 데리러 왔다. 그래서인지 약간 짜증 난 투로 말했다. “내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왜 굳이 데리러 와야 하는 거야? 쟤도 임지효처럼 돈만 밝히는 타입이잖아. 임씨 가문에서 싫다는 데도 나오지 않는 애를 뭣 하러 집까지 데려가서 조상님처럼 모셔야 하냐고?” 한편 박서준은 박아윤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곧장 침을 흘릴 기세였다. “응? 그런데 아윤이 너무 이쁘잖아. 피부도 하얗고 말랑말랑해. 마치 아기 같아. 막 쓰다듬어 주고 싶어서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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