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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민재하는 기숙사 건물 아래 장대비 속에 서 있었다. 비가 머리카락 끝을 타고 흘러내려 어깨를 적셨다. 이렇게 서 있던 게 몇 번째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 익숙한 실루엣은 여전히 매번 그를 스쳐 지나갔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마치 그가 공기라도 되는 듯 지나쳤다. 수십 번의 기다림, 수십 번의 마주침, 그리고 그만큼의 냉정한 외면과 거절... 처음엔 초조했다. 분했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민재하는 밤마다 잠들지 못한 채스스로의 과거를 조금씩 되짚기 시작했다. 기억 속 장면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오유나가 SNS에 기분이 안 좋다는 글을 올렸던 날, 민재하는 송하린과 심하게 말다툼하고 있었음에도 모든 걸 내던지고 밤새 전화를 걸었다. 송하린이 생리통으로 힘들어하던 오후, 민재하는 따뜻한 물이나 마시라며 대충 넘기고 그 시간에 오유나에게 대추차를 사러 뛰어나갔다. 그리고 뒤풀이 날, 수박의 가장 달콤한 조각을 습관처럼 오유나에게 건넸을 때 송하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던 그 순간도 떠올랐다. 그리고 호수에서 송하린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을 때 민재하는 차가운 한마디만 남겼다. “이제 끝난 사이야. 그러니까 죽든 살든 나랑은 상관없어.” 그는 송하린이 오랫동안 자신을 좋아해 왔다는 사실에 기대어 수없이 그녀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리고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야 깨달았다. 떠나지 못한 건 송하린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분노와 자존심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끝없는 후회와 절망이 집어삼켰다. 그 후, 민재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과거에 거칠고 자유분방한 기운은 자취를 감추고 그의 눈에는 늘 묵직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송하린의 연습실 앞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편지도 선물도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대신 두꺼운 편지지를 한 묶음 샀다. 그는 밤마다 룸메이트들이 잠든 뒤 책상 위에 불을 켜고 글을 썼다. 그리고 송하린의 기숙사 우편함에 조심스레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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