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박진섭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억눌렀다. 목소리를 억지로 낮추고 주먹을 책상 위에 댄 채 눈빛만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가.”
나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박진섭의 차가운 눈매를 보자 입술 끝까지 올라온 말들이 결국 목구멍에서 삼켜지고 말았다.
박진섭과 임준호는 이런 일을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세세히 말해도 오히려 내가 무슨 수를 써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게 아닌지, 누군가 일부러 나를 그들 곁에 보낸 게 아닌지 의심할 뿐이었다.
차라리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천천히 진실을 말하는 게 낫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서재를 나갔다. 나가면서 문도 닫아주었다.
서재는 방음이 잘 되어 있었으며 문이 닫히자 안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박진섭과 임준호가 함께 내려왔다.
식사 자리는 매우 조용했고 내가 말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 임준호는 전화를 받더니 박진섭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박진섭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뒤따라가며 마당으로 나섰다. 언제부터인지 가랑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박진섭은 차에 오르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차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창문이 올라가며 박진섭의 얼굴은 완전히 가려졌다.
그때 유은수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밖에 비가 와서 쌀쌀하니까 어서 들어가요. 박 대표님은 임 비서님이랑 묘지 보러 가신 것 같아요.”
내가 되물었다.
“묘지요?”
“네. 강지연 씨 사건의 범인이 잡혔으니 판결이 나면 장례를 치러야 하잖아요. 박 대표님이 며칠 전부터 직접 묘지를 알아보고 계셨다더군요. 가장 좋은 묘원에 풍수도 좋은 곳만 고르고 계셨죠. 강지연 씨 일은 늘 박 대표님이 직접 챙기시니까요.”
나는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가랑비만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차는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날 밤, 박진섭과 임준호가 언제 돌아왔는지 혹은 아예 돌아오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침대에 누웠는데도 천장만 바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