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화
“나는 확실히 실망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말하자 고개를 들어 나를 의아하게 바라본 박진섭은 이내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한순간에 차가워진 분위기, 아무도 이 주제를 이어서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박진섭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네가 그린 이 그림들, 내가 한번 볼 수 있을까?”
나는 박진섭의 표정을 살폈다.
비록 질문인 것 같은 말이었지만 이미 그 그림들을 가지고 가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마치 내가 거절해도 어차피 무리하게 가져갈 기세였다.
박진섭은 이 그림들 속에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니 당장 가져가지 못하게 한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그림을 봤고 내가 막는다고 해도 머릿속으로 그 디테일들을 떠올리며 그려볼 테니까.
게다가 나는 이미 한 번 그렸던 그림이라 디지털 버전으로 다시 그릴 때는 참고할 필요가 없었다. 머릿속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져가도 돼.”
내가 허락하자 박진섭은 그림들을 챙겨서 방을 나갔다.
나는 밤새워 그림을 그리느라 아직도 어지러운 머리를 주무르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때 옆에 놓인 핸드폰에서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확인하니 발신자는 이주희였다.
[박진섭이 너를 꽤 신경 쓰는 것 같네.]
아무런 맥락도 없는 한마디, 그리고 그 문장은 마치 이주희가 어디선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깜짝 놀라 휴대폰을 꽉 쥔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제 강씨 가문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 일, 나는 손희진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 과거를 정확히 알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주희라면 가능했다.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고 게다가 강씨 가문과 연관이 있는 송씨 가문도 내 정보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강씨 가문 사람들을 찾아내는 건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나는 바로 이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나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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