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는 그가 옷을 허둥지둥 입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주먹은 핏줄이 돋을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곧 차를 몰고 떠났다.
송시후는 가는 내내 내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댔다. 이를 악물고 있는 걸 보니 극도로 분노한 듯했다.
마지막까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갑자기 격분하여 휴대폰을 차창에 집어 던졌다.
“강지연! 너는 정말 죽어 마땅한 년이야! 평생 돌아오지 마라... 오기만 해봐,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걸까? 강유나가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그의 분노를 지켜보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하지만 문득 나를 살해한 남자가 강유나의 부탁을 받고 그랬다는 말이 떠올랐다.
‘혹시 강유나가 내 소식을 듣고 송시후를 불렀던 걸까? 그렇다면 그는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
의문을 품고 나는 그를 따라 강유나의 아파트 아래로 향했다.
송시후는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강유나의 방문은 열려 있었고 바닥에는 피로 흠뻑 젖은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위에는 인쇄된 글자가 붙어 있었다.
[유나 씨에게 보내는 선물 - 강지연으로부터]
지금은 영혼일 뿐이지만 짙은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일까?’
강유나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송시후가 오자마자 그녀는 그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시후 오빠, 너무 무서워... 지연이가 도대체 뭘 보낸 거야? 무서워서 열어볼 수가 없어. 걔는 지금 집에 있어?”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송시후의 목에 매달렸다. 순진하고 가련해 보였다.
송시후의 표정은 더욱 격노했다. 그는 먼저 강유나를 번쩍 안아 올려 소파에 앉히고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그의 손이 격렬하게 떨려왔고 상자 안에 든 ‘물건’은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나는 상자 안의 물건을 확인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안에는 나와 송시후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차가운 종이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었고 탯줄은 거칠게 잘려져 있었다. 온몸을 적신 핏물과 빗물이 종이상자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그놈이 내 아이의 시체를 이렇게 보내다니...’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당장이라도 악귀가 되어 나를 죽인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송시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아이를 넋 놓고 바라보다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강지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차마 아이에게 손을 뻗지 못했다.
강유나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다가와 상자 안을 들여다보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시후 오빠... 지연이가 애를 지운 거야?”
그녀는 입을 가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이 아이는 너희들의 핏줄인데... 벌써 6개월이나 됐는데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송시후는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며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조수에게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찾아! 시내 모든 병원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강지연 그 여자를 찾아내! 아주 끔찍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끔찍하게 만들겠다고?’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그가 내뱉은 말은 고작 그거뿐이었다.
“오빠, 이건 어떻게 하지..."
강유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옆에 놓인 상자를 가리키며 울먹였다.
“갖다 버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의 주위를 맴돌며 절망에 잠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한때는 소중한 생명이었는데... 시후 오빠, 그건 너무한 것 같아.”
그녀는 동정심 가득한 목소리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역시 유나는 착하네. 너에게는 억울한 일인데, 이런 것까지 걱정하고.”
강유나의 가식적인 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끌어내려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산에다 던져 버려! 강지연 그 여자가 언제까지 숨어 지낼 수 있는지 한번 두고 봐야겠어.”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 사람들이 피로 얼룩진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 공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절망에 휩싸인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들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목놓아 울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강유나는 이미 송시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시후 오빠,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마음이 너무 불안해.”
“두려워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오늘 밤은 내가 함께 있어 줄게.”
송시후는 강유나를 품에 안고 나지막이 위로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나에게 적대적인 눈빛과 험악한 말투로 대했었다.
“우리 술이라도 한잔하러 갈까? 지난번 생일도 제대로 못 보냈는데.”
강유나가 제안했다.
송시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넋이 나간 듯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술집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정신을 어지럽혔지만,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거 한번 마셔봐. 새로 나온 칵테일인데, 이름이 ‘사랑의 함정’이래.”
강유나는 수줍게 얼굴을 붉혔지만 송시후는 무슨 고민이 있는 듯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술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켜고 술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집어던졌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고 강유나도 움찔하며 그의 팔을 붙잡고 다정하게 물었다.
“시후 오빠, 혹시 아직도 언니 때문에 화났어?”
“그런 여자 때문에 화내서 뭐해.”
송시후는 냉정하게 코웃음을 치며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천천히 마셔. 나랑 같이 마시기로 했잖아.”
강유나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오늘 네가 마시고 싶다는 대로 다 맞춰줄게. 이따가 집에도 데려다주고.”
그는 강유나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억지로 지켜봐야 하다니,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연거푸 술을 들이켠 탓에 송시후도 약간 취기가 오른 듯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룸을 나서자 나는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마침 강유나가 뭘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때, 송시후가 탁자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빛났다.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