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송시후는 말을 마치자마자 휙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그러자 박진섭이 그를 막아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디 가려고?”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서 안에서 두 사람이 싸울 기세로 보이자 경찰은 책상을 두드리며 강조했다.
“여기는 경찰서입니다! 보호자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정말 입건하지 않을 겁니까?”
“됐어요.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송시후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알겠습니다. 만약 오늘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신고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놓칠 수 있거든요.”
경찰은 떠나는 그에게 몇 마디 더 충고했지만 송시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경찰서를 나서자 박진섭은 억눌렀던 분노를 터뜨렸다.
“지연이랑 결혼까지 했으면서 왜 좀 잘해주지 못하는 거야!”
송시후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뭘 잘해줘? 평생 연기나 하면서 살라는 거야?”
나는 그 두 사람 옆에 서서 고개를 돌려 송시후를 쏘아봤다.
내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나 자신이 한심했고 과거의 선택이 후회스러웠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결혼한 거야? 그때 그 사고로 끝낼 수도 있었잖아.”
그가 언급한 건 그날 밤의 실수였다. 당시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이를 지우라고 하지 않고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을 보였는지...
“넌 참 쉽게 말한다. 그럼 너는 왜 그때 떠맡지 않았어?”
나는 그가 그런 황당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결국 그는 날 아무 남자와 뒹굴어도 상관없는 여자 취급하는 거였다.
“지연은 널 정말 사랑해. 널 위해서 심지어...”
박진섭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심지어 뭔데? 내가 모르는 일이 또 있어?”
송시후는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됐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그냥, 내가 충고하는데 지연이 찾으면 당장 이혼해. 애는 내가 키워줄 수 있어.”
이 순간까지 박진섭은 아직 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 늘 내 편이었던 이 착한 친구는 내게 너무나 잘해줬다.
“아이는 무슨... 그 독한 여자가 아이를 죽였어. 너 몰랐어?”
송시후는 그 말을 꺼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내가 그의 아이를 없애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애를 지웠을 뿐 아니라, 애 시체를 유나에게까지 보냈어.”
박진섭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떨며 얼굴을 굳혔다.
“그럴 리가 없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박진섭은 눈가를 붉히며 뒷걸음질 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같은 바보나 강지연이 순진한 척하는 애송이인 줄 알겠지. 너랑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찾으려면 너 혼자 찾아봐. 나 귀찮게 하지 말고.”
말을 마친 송시후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나는 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흘끗 보더니 다시 박진섭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나를 찾지 마. 그 여자와 관련된 어떤 소식도 듣고 싶지 않으니.”
이전에는 그에게 일말의 인간성이 남아있다고 여겼으나 이토록 냉정할 줄은 몰랐다.
박진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과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송시후에게 이끌려 가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나는 영혼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될 텐데 앞으로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내 시신이 발견되었나. 그래서 아직 떠날 수 없는 건가 보다. 어쩌면 내 시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만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거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송시후는 이미 멀리 가버린 뒤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그는 갔는데, 왜 나는 아직 여기에 있는 걸까?’
따라가려 했으나 나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나를 잡아끄는 듯, 따라갈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박진섭과 함께 남겨졌다.
‘대체 무슨 일이지? 혹시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어서 더 소중한 사람한테 작별 인사를 하라는 걸까?’
“강지연, 너는 정말 바보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나는 그런 안타까운 탄식을 들을 수 있었다.
박진섭은 길가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실로 어리석었다. 만약 그때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나를 찾을 수 있다면, 부디 나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게 해 줘. 부탁이야.”
내 손이 그의 어깨에 닿으려 했지만 투명한 손은 허공에 뜬 채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강지연,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자는 고개를 들었고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그저 평범한 친구 사이일 뿐인데, 그는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남편, 아니 명목상의 남편도 나를 그저 짐처럼 여길 뿐인데 말이다.
박진섭이 나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보니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옆에 서서 그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감정을 추스른 뒤,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무형의 힘이 나를 밀어 박진섭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의 차 뒤를 따랐다.
‘이건 대체 무슨 영문인가? 누가 내 영혼을 맘대로 주무르기라도 한다는 거야?’
죽은 몸이 된 것도 억울한데, 누군가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진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박진섭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는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댔다.
“경찰에 신고하라 했잖아! 온 시내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내라고!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어? 당장 찾아내지 못하면 전부 해고야!”
저렇게까지 격노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언제나 부드럽고 차분했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창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져 버린 그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 순간, 그가 쏜살같이 액셀을 밟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좌석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을 움켜쥘 뿐이었다.
‘영혼이 된 후에도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공포를 느낄 수 있다니.’
나는 그저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예전에 봤던 그대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소파에 앉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의 집 안을 목적 없이 떠돌아다녔다.
심심해질 때쯤, 그가 갑자기 일어서서 책장 앞으로 가더니 버튼 하나를 눌렀다.
책장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놀랍게도 그의 집에는 비밀 공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