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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박진섭의 발걸음을 따랐다. 박진섭은 능숙하게 비밀스러운 방 안으로 들어섰고 나는 눈앞의 광경에 경악했다. 비밀스러운 방 안에는 수많은 긴 실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긴 실들 위에는 나의 사진들이 매달려 있었다. ‘언제 이런 사진들을 찍은 걸까? 설마...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끔찍한 변태였나?’ 나는 혼란에 휩싸였고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깊숙한 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연아, 너는 정말 바보야! 어째서 그 사람을 선택한 거야?” “분명히 반년만 있으면 됐는데! 네가 반년만 기다렸다면, 내가 성공해서 돌아와 너와 결혼했을 텐데, 왜 그렇게 성급했던 거야!” “아니... 어쩌면 다 내 잘못인지도 몰라.” “네가 나랑 고생하는 걸 볼 수 없어서 모든 것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린 내 잘못이야. 그러지 않았더라면 졸업할 때 내 진심을 숨기지도 않았을 텐데.” “지연아...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뭐라고?’ 나는 극심한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제야 비로소 이 사진들의 출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에 촬영된 사진들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도 존재했다. 나는 박진섭이 나에게 진심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송시후와 나는 집안의 결정으로 맺어진 관계나 다름없었다. 송시후가 학창 시절 강유나의 뒤를 쫓아다녔던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이 강유나 때문에 더 이상 엮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나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파티에서 술에 취해 옆 방으로 가서 술을 깨려다가 독한 술기운에 정신이 흐릿해진 채 한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 남자가 송시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송시후는 회사 단합대회에서 술에 취했고 나처럼 술을 깨러 온 것이었다. 다만 우리 둘 다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후, 송시후는 절대 누구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내가 본 송시후는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을 꺼내 강유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심지어 몇백만을 들여서라도 사람을 찾아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 뒤, 김경애가 강 씨와 송 씨 가족 모임에서 나와 송시후의 결혼을 발표하는 순간, 그것은 엄청난 폭탄선언이 되었다. 심지어 김경애는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과...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까지 발표했다. 송시후는 충격에 휩싸여 나를 쏘아봤다. 분노와 경멸, 그리고 살기마저 느껴지는 그 눈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경애에게 그 어떤 것도 말한 적이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날 밤 강유나가 억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송시후가 그녀를 뒤쫓아 나갔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돌아왔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믿기 어렵게도 송시후는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해왔던 김경애의 결혼 요청을 마침내 수락했다. 다만 바로 그 결혼이 내 삶을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몰아넣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신은 내가 죽은 뒤 편히 눈 감지 못하게 하고, 이승을 떠도는 외로운 영혼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송시후의 역겨운 모습을 지켜보게 하거나, 박진섭이 나에게 가진 깊은 애정을 목격하게 하는지. 남자는 어두컴컴한 암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전화를 받은 박진섭의 얼굴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정말이야?” “알았어.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 박진섭은 급히 전화를 끊고 차 키와 외투를 챙겨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허리에 가해지는 외력을 느꼈고 그 힘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박진섭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남자의 미간에는 다급함과 분노가 어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차량은 쏜살같이 질주하여 이윽고 도심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숲 앞에 멈춰 섰다. 숲의 입구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으며 그들의 시선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박진섭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안내했다. 박진섭은 무거운 표정으로 숲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몇 번이나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삽을 들어 조심스럽게 작은 흙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마침내 눈앞에 앙상한 작은 몸이 드러났을 때,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그 쓰레기 같은 아빠에 의해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죽은 후 험한 산에 버려진 것을 보자 심장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내 아가... 불쌍한 내 아가.’ 박진섭은 사람을 시켜 겨우 7개월 된 아기를 파내 작은 상자에 담았다. 박진섭의 비서 임준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지시한 일을 그대로 보고했다. “대표님, 지시하신 일은 모두 처리되었습니다. 이제, 이 아이를 어디에 안치할까요?” 그 자리에 있던 아이가 있는 경호원들은 차마 피투성이인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정말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지연이의 행방은 아직도 조사 중이야? 법의관을 불러 아이의 사인이 무엇인지 확인해 봐. 지연이의 행방을 찾지 못하더라도, 내가 대신 복수해줄 거야!” 박진섭의 눈빛은 확고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임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아기가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람들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옆에 놓인 작은 상자에 넣었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괜히 밖에 나갔어. 너와 함께 집에서 잘 지냈어야 했는데...” 왜 송시후 때문에 만삭의 몸으로 케이크를 받으러 나가서 끔찍한 모욕과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심지어 아기조차 화를 피하지 못하고 말이다. 박진섭의 사람들은 일을 빠르게 처리했다. 법의관은 법의학 연구소에서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고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아기를 부검실로 옮겨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박진섭의 곁을 떠날 수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임준호는 다시 돌아왔고 그의 옆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작은 관을 들고 있는 남자가 함께였다. “대표님, 풍수 명당은 이미 찾았고 법사님도 모셔왔습니다. 강지연 씨의 아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박진섭은 갈라진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연아, 나를 원망하지 마. 나도 방법이 없었어.” “하지만 안심해. 정말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면, 내가 너를 대신해서 복수할게.” “두려워하지 마. 모든 것이 끝나면 내가 너를 찾아갈게.” 반나절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법의관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아이의 얼굴을 복원해주었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고 나와 검사 결과를 담담하게 보고했다. “끔찍하게 죽은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얼굴은 돌로 짓이겨진 상태였습니다. 몸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7개월 정도 된 아이로 추정됩니다. 배에는 아직 처리되지 않은 태반과 탯줄이 붙어 있었고 자궁 내막의 조직도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특히, 피비린내가 매우 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지로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모체 역시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짐작하고 있었다. 넓고도 좁은 세상, 그는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그녀를 찾도록 지시했기에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 강지연은 죽었다. 그것도 매우 끔찍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끔찍한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그는 순간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격렬한 충격을 받아 거의 실신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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