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박지한이 샤워가운을 걸친 채 머리를 닦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 이미 씻고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괜히 시선이 마주칠까 그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천천히 다가온 박지한이 내 얼굴에 흐른 머리카락을 살짝 걷어내며 말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해? 안 잡아먹어.” 숨 쉴 틈도 없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산차꽃 향기.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잔잔하고 은은한 샴푸 향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발 물러섰고 황급히 등을 돌려 화장대 쪽으로 걸어갔다. 모든 정리를 마쳤을 때쯤, 박지한은 양손을 배 위에 얹은 채. 고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늦었는데 오늘은 날 가만히 놔두겠지?’ 조심스럽게 이불 한쪽을 들추고 박지한을 등진 채 누웠다. 하지만 그 순간, 산차꽃 향기 가득한 품에 그대로 안겼다. 어둠에 시야는 닫혔지만 오히려 다른 감각들이 더 또렷해졌다. 박지한의 따뜻한 숨결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쇄골, 목선, 귓불, 턱, 그리고 입가를 스쳐갔다. 마지막엔 내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많이 늦었는데 안 자? 나 피곤한데.” 나는 최대한 피곤한 척하며 중얼거렸다. 조금은 봐주길 바랐지만 박지한은 짧은 침묵 끝에 웃으며 말했다. “오후 내내 드라마 본 사람이 왜 피곤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이 내 턱을 잡아 올리고 입술이 벌어졌다. 혀가 천천히 깊이 들어왔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그 사람의 숨결, 거기서 도망칠 수 없었다. 내 저항은 흐릿한 신음으로만 흘러나왔고 긴 밤은 그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박지한의 ‘장난’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는 없었고 협탁 위에 그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굵고 힘 있는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주머니 휴가 중. 오늘 집에 없으니까 아침은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 찬 음식 절대 금지.’ 나는 그 메모를 한참 바라보다 어젯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