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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출소 날, 매서운 찬바람에 송서아는 몸을 덜덜 떨었다. 앙상한 손을 들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낡은 솜옷을 움켜쥐고, 시리고 아픈 무릎을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대문을 나섰다. 교도소 밖, 고급 스포츠카에 탄 운전기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내려와 짐을 받아 들었다. “은우 씨랑 연준 씨는 지금 이나 씨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계세요. 저더러 친히 서아 씨를 파티에 모셔오라고 분부했습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송서아는 그제야 ‘네’라고 대답했다. 스포츠카가 도로를 질주하여 시내 중심가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럭셔리한 로비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와인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에 송서아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가까운 곳에서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입은 송이나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임은우는 친히 그녀의 머리에 찬란한 생일 왕관을 씌워 주었고, 송연준은 케이크를 들고 생일 축가를 불렀다. 훈훈하고 애틋한 대가족의 풍경에 손님들은 부러워하며 끊임없이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나 씨는 베클리 음대를 졸업하자마자 음반 회사와 계약했다던데요. 이제 정말 꽃길만 걷겠네요!” “당연하죠. 이나 씨는 음악계에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천재예요. 이나 씨가 썼던 첫 번째 노래는 SNS에서 인기가 폭발해 엄청난 팬덤을 얻었잖아요!” 아부가 난무하는 가운데 누군가 문가에 서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혐오스러운 듯 소리쳤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이런 고급 호텔에 어떻게 거지 같은 사람이 들어왔어? 옷차림 좀 봐. 가난뱅이 냄새가 풀풀 나잖아!” 뭇사람들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송서아를 쳐다봤다. 순간 임은우와 송연준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곧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를 맞이했다. 임은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했다. “3년 만에 왜 이렇게 말랐어?” 송연준은 그녀의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창백한 얼굴을 드러냈다. “괜찮아. 우리가 좀 더 신경 써서 잘 먹이면 금방 회복될 거야.” 송서아는 눈빛이 흔들렸고 입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내 인생은?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어?”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또다시 그녀를 감옥에 보내기 전에 했던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말했잖아, 서아야. 이건 네가 이나에게 빚진 거야. 이번 일만 끝나면 완전히 갚는 거니까 제발 응석 좀 부리지 마.” “나랑 연준이가 예전처럼 잘해줄 테니까 너는 그 불쾌한 과거들 다 내려놔.” 불쾌한 과거? 겨우 이 한 마디로 그녀가 지난 몇 년 동안 겪은 모든 것을 요약할 수 있을까? 눈앞에 있는 두 남자 중 한 명은 그녀의 오빠, 또 한 명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한때 그녀를 끔찍이 아끼던 사람들이지만, 친히 그녀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송서아는 입양아였다. 10년 전, 친여동생이 예기치 않게 실종되자 송연준은 보육원에서 여동생을 입양했는데 그게 바로 그녀였다. 그는 송서아에게 오빠라고 부르게 했고, 8년 동안이나 끔찍이 아끼고 보살피며 보석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녀 역시 송연준의 곁에서 얌전히 지내며 여동생을 잃은 뒤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를 서서히 지워나가게 했다. 나중에 송연준의 절친 임은우가 송서아에게 첫눈에 반했고 몇 번의 구애 끝에 두 사람은 곧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오빠와 남자친구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송연준의 친동생인 송이나가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은 송서아더러 많은 고난을 겪은 송씨 일가의 진짜 딸 송이나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 역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원래 송이나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송이나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양보했다. 방도 양보하고, 시험 성적도 양보하고, 심지어 송이나가 신부전증으로 신장 이식이 필요할 때 선뜻 자신의 신장까지 양보했다. 하지만 송이나는 여전히 그녀를 해치려고 온갖 방법을 썼다. 송연준은 죄책감과 안타까움에 송이나를 맹목적으로 감쌌고 심지어 임은우마저 송이나를 편들어주었다. 나중에 그녀가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자 그들은 베클리 음대 합격 통지서를 갓 받은 송서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송서아가 거부하자 그들은 권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그녀를 감옥에 보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 송연준은 그녀에게 넌 영원히 내 여동생이며 비록 감옥에 보내고 싶지 않지만 송이나에게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했다. 임은우 역시 그녀에게 몇 년만 감옥에서 살다가 돌아오면 꼭 결혼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송이나는 그녀를 대신해 베클리 음대에 진학하여 음악계에서 큰 성공을 이뤘고, 송서아는 감옥에서 4년 동안 폭행과 괴롭힘, 협박을 받으며 온몸에 상처를 입고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이제 드디어 감옥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인생길을 내디뎌야 하는 걸까? 그녀는 자조적인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두 남자를 바라봤다. 입을 열려는 순간, 송이나가 갑자기 가식적인 태도로 다가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언니, 출소했네? 그간 감옥에서 잘 지냈어?” 주위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송씨 일가의 살인자였네! 나는 아직도 쟤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죽인 사건이 기억에 생생해. 그때 얼마나 떠들썩했는데...” “어디 그뿐이야? 뺑소니 증거가 명백한데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잖아. 심지어 이나 씨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대. 송씨 일가에서 어쩌다가 저런 애를 입양한 거야? 에이, 재수 털려!” 사실을 완전히 왜곡한 유언비어를 듣자 송서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무심코 자신을 절망에 빠뜨렸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끊임없이 고개를 흔들고 귀를 막았다. 그러고는 송연준과 임은우의 놀란 시선을 무시한 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인파 속에서 뛰쳐나왔다. 구석에 숨어서 해가 질 때까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눈물이 메말라지고 나서야 그녀도 감정을 추스르고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익숙한 침실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방이 고양이 방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집사는 빈방이 없다면서 그녀더러 가정부와 함께 지내라고 했다. 마침 이때, 송이나가 돌아왔다. 그녀는 케이크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내 생파에 왔으면서 케이크도 못 먹었잖아. 자, 이제 먹어봐.” 크림 속에 들어있는 망고 잼을 보자 송서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 망고 알레르기 있어서 못 먹어.” 송이나는 곁눈질로 뒤따라 들어온 두 남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설마 아직도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야? 아니면 내가 언니 방을 고양이 방으로 바꿔놔서 안 먹는 거야?”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자 임은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송서아를 노려봤다. “서아 넌 왜 돌아오자마자 이나 괴롭혀?” 송서아는 숨이 턱 막히고 눈가에 은은한 고통이 차올랐다. “뭐? 내가 괴롭혔어? 이나가 돌아오자마자 망고 케이크 먹으라고 강요하는 건 뭔데?” “네가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이나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케이크에 망고를 넣을 리가 있겠어? 억울하게 애 함부로 모함하지 마.” 송연준은 훈계하면서 케이크를 빼앗아 송서아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망고 잼이 목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목덜미에 개미가 기어가는 듯 가렵고 따가웠다. 송이나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그녀를 힐끗 보더니 자연스럽게 송연준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오빠, 은우 씨,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나 머리가 너무 아파.”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에 두 남자는 몹시 긴장하며 서둘러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세 사람이 몸을 돌리는 순간, 송서아는 몸이 휘청거려서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인기척을 들은 임은우와 송연준은 잠시 멈칫할 뿐 냉담하게 말했다. “또 무슨 속셈이야? 이나가 지금 아파서 병원 다녀와야 하는데 상황파악 좀 해!” 말을 마친 그들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떠나갔고 그녀를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서아는 입안에 맴도는 구조 요청을 겨우 삼켰다. 겨우 방까지 기어서 돌아간 후, 한바탕 방안을 뒤지고 나서야 항알레르기약을 찾아내 생으로 삼켰다. 하지만 불편한 느낌이 점점 더 심해져서 쉴 새 없이 긁어대며 핏자국을 냈다. 부어오른 뺨은 벌겋게 물들었고 가슴 속 산소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곧 질식사할 거라고 생각할 때, 항알레르기약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방 안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다만 송서아는 전혀 받을 생각이 없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전과자라고 피하기 바쁜데 누가 전화를 걸겠는가? 아마도 스팸 전화겠지.’ 하지만 상대는 그녀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쉴 새 없이 걸어왔다. 벨 소리가 다섯 번 울리고 나서야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국제 전화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수신 버튼을 누른 후,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감격에 젖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효주야, 오빠야. 드디어 우리 효주 찾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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