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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왜 이렇게 체력이 좋지?

하지만 인생은 늘, 막 숨 좀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낄 때쯤 어김없이 뒤통수를 세게 맞는 법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밤, 모든 게 변해버렸다. 한진우는 고열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기어이 출근을 하겠다고 했다. 도서관에 고위급 인사가 오기 때문에 결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처음으로 한진우에게 화를 냈다. “진우 씨, 진짜 바보야? 개근하면 주는 그깟 몇만 원 좀 받겠다고 목숨까지 걸어?!” 그는 낡은 코트를 여미고 병색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그깟 몇만 원이라니? 분유 한 통은 살 수 있는 돈이야.” 나는 막아서지 못했고 결국 한진우는 비를 맞으며 나갔다. 오후가 되자 비는 더 거세졌고 오래된 집은 낡은 구조라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8개월이라 배가 꽤 많이 나온 몸을 이끌고 나는 양동이를 든 채 이리저리 다니며 물을 받아냈다. 그런데 바닥이 미끄러웠던 탓에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에 세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날카롭게 짓누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오며 다리 사이로 무언가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 식은땀에 젖은 나는 몸을 끌듯이 기어가 휴대폰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한진우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다은아?” 전화기 너머로 어딘가 분주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우 씨... 살려줘... 나... 안 될 것 같아...” “다은아?!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야? 응? 기다려, 금방 갈게! 곧 도착할 거야!” 전화기 너머로 뭔가 와르르 넘어지는 소리와 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세차게 열렸다. 문틈 사이로 비에 흠뻑 젖은 한진우가 미친 듯이 뛰어 들어왔다. 내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낯설 만큼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한진우가 나를 어떻게 안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팔에 안긴 순간, 숨이 막힐 만큼 너무 세게 끌어안았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갈비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 “자지 마! 다은아, 제발 자지 마!” 그는 폭우를 뚫고 미친 듯이 달렸다. 낡은 자전거는 어디에 버렸는지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채 도시 한복판을 그대로 뚫고 제일병원을 향해 달렸다. 빗줄기가 한진우의 얼굴을 때렸는데 나는 그게 빗물인지 눈물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기대어 거칠게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북처럼 쿵쿵, 귀를 때렸다. ‘이상하네. 책이랑 일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체력이 좋지?’ 집에서 병원까지의 거리는 최소 3km가 넘었다. ‘어떻게 몸무게 50kg이 넘는 임산부를 안고도 숨 한번 안 쉬고 달릴 수 있어?’ 온몸이 무너질 듯 너무 아팠기에 더 깊게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몰려와 나를 데려갔다.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세요!” 수술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한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눈빛이 보였다. 잔혹하고 날이 서고 살기가 감도는 것이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한 야수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눈빛도 잠시뿐이었고 이내 그저 눈가가 벌겋게 물든, 소심하고 어수룩한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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