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밤이 깊었지만 이씨 가문의 저택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유지훈이 이소희의 방 문을 걷어차서 열어젖히자 문틈으로 몰아친 바람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항공권 일정표가 휘날렸다. 그것은 서울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 일정표였다.
“유지훈, 너 또 무슨 미친 짓이야!”
이민준이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으며 화를 냈다.
이소희는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떠났고 유지훈은 병원에서 최가인을 지키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한밤중에 이씨 가문의 저택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지훈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했고 자신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발밑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방 안을 둘러봤다.
그런데 이소희의 방 안 가구들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고 마치 오래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은 공간처럼 텅 비어 있었다.
유지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의 장면을 바라봤다. 가구들의 배치는 그대로였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옷장 안은 절반 이상 비었고 화장대 위에 뚜껑이 열린 채 덩그러니 놓인 철제 상자 하나만 남아 있는데 그 안도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돌아섰다가 문가에서 도우미가 쓰레기봉투를 치우려는 걸 보고 갑자기 어떤 직감이 와 망설임 없이 다가가 봉투를 찢어버렸고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중 영화 티켓의 뒷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훈 오빠와의 첫 데이트.]
반쯤 찢어진 일기장 한 페이지도 보였는데 눈물에 번진 글씨가 남아 있었다.
[오늘 지훈 오빠가 내가 만든 도시락이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맨 아래에 반듯하게 접힌 초콜릿 포장지가 있는데 거기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소희가 열네 살이던 그해에 유지훈이 무심하게 던져줬던 바로 그 초콜릿이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유지훈은 휴대폰을 움켜쥔 채 미친 듯이 이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계적인 안내음이 다른 걸로 바뀌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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