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결혼식 당일, 진시혁은 사람을 시켜 내 웨딩드레스를 벗기게 한 뒤 직접 의붓여동생에게 입히고는 냉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명분은 네가 갖고 사랑은 연아에게 줄 거야. 결혼식 마치면 바로 너와 혼인신고 할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예전처럼 순순히 진시혁을 기다릴지 내기하며 웃어댔다.
이 결혼을 위해 나 홀로 5년을 버텼으니까.
하지만 성당을 나서는 순간 나는 어디론가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전에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
그날 밤, 한 대의 전용기가 나를 새집으로 데려갔고 그 순간부터 나는 철저히 진시혁의 세상과 선을 그었다.
5년 후, 딸을 데리고 파티에 갔을 때 문 앞에서 5년 만에 보는 진시혁과 마주쳤다.
내 품에 안긴 딸을 보고 그는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5년이 지나도 결국 돌아왔네. 나중에 걔는 연아한테 입양 보내. 그러면 날 아빠라고 부를 수는 있으니까.”
진시혁은 몰랐다. 이 아이가 그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니 5년 만에 보는 진시혁이 그곳에 서 있었다.
곁에는 내 의붓여동생 송연아도 함께.
“언니, 정말 언니였어? 시혁 오빠를 찾아올 줄이야.”
진시혁은 나를 보자 눈빛에 놀라움이 스쳤지만 일부러 무심한 척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쟤는 개처럼 들러붙어서 아무리 떨쳐내도 안 떨어진다고.”
뒤따라오던 그의 친구들이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시혁아, 시간 나면 개 훈련하는 법 좀 가르쳐 줘.”
“일부러 예쁘게 차려입고 우연히 만난 척하는 거야?”
“시혁이와 연아가 결혼한 거 알면 엄청나게 후회하겠네.”
송연아는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랑하듯 진시혁의 팔을 휘감았다.
“언니, 아직도 몰라? 언니가 뭣 모르고 결혼식 때 도망쳐서 아빠가 결국 결혼 상대를 나로 바꿨어.”
그때는 진시혁을 정말 사랑했다. 아무리 송연아 때문에 우리의 결혼을 여러 번 미뤘어도 끝끝내 나와 결혼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진시혁은 결혼식장에서 내 웨딩드레스를 벗겨 송연아에게 입혔다.
그날부터 다시는 그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지금은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도 있고 사랑스러운 딸도 있는데 누가 쓰레기 같은 저놈을 그리워하겠나.
오늘은 남편이 나와 딸을 위해 가족 파티를 열어줬기에 이런 특별한 날 가치 없는 것들 때문에 화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손에 낀 결혼반지를 그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축하해. 사실 나도 결혼했어.”
내 말을 들은 진시혁의 얼굴이 곧장 어두워졌다.
현장의 분위기도 한순간에 싸늘해지고 진시혁의 한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말렸다.
“송주희, 장난 그만해. 너무 선 넘으면 시혁이가 진짜로 널 버릴지도 몰라.”
어이가 없었다.
“난 진짜 결혼했어. 오늘은 파티에 참석하러 온 거야.”
내 말에 그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송연아는 나를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언니, 거짓말도 정도가 있지. 오늘 여기서 열리는 파티는 내 딸 생일 파티뿐이야.”
이런 우연이 있나. 남편이 나와 딸을 위해 준비한 파티가 그들의 딸 생일 파티와 같은 호텔에서 열릴 줄이야.
특별한 남편의 신분 때문에 가족 파티를 대외적으로 공개할 리가 없으니 그들이 모르는 건 당연했다. 물론 나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돌아서 떠나려는데 진시혁이 말했다.
“내 딸 생일 파티에 거지는 못 들어와. 하지만 우리의 오랜 정을 생각해서 너만은 들여보내 줄게. 그동안 가난하게 살았으니 이렇게 호화로운 곳에는 오랜만에 들어오겠지.”
진시혁의 말에 웃음만 나왔다.
지난 몇 년간 남편과 함께 개인 소유지인 섬에서 살았다. 이번에는 남편이 뉴엘로 돌아가 가문을 관리해야 했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되찾고 싶었기에 따라왔다.
더 이상 그들과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 뒤돌아서 파티장으로 향했다. 그때 딸이 갑자기 안에서 뛰어나와 내 품에 안겼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요?”
딸을 본 진시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나 했더니, 내 아이를 몰래 낳았구나.”
그는 고개를 치켜들고 오만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연아와 결혼했으니 얘는 연아한테 입양 보내야지.”
그 모습이 역겨울 뿐이었다.
예나는 진시혁의 딸이 아니었다.
막 설명하려던 찰나 송연아가 끼어들었다.
“언니, 언니가 없는 동안 아빠가 상연 그룹을 나한테 넘겨줬어. 언니같이 쓸모없는 사람이 어떻게 본인과 아이를 먹여 살리겠어. 언니 딸은 내 딸 하녀로 데려올 거야.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줄게.”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남편과 내가 5년 동안 애지중지 키웠던 공주님을 데려가서 하녀로 부려 먹을 생각이라니.
“예나는 네 아이가 아니야. 우린 그때 철저히 피임했어.”
나는 딸을 안은 채 진시혁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진시혁은 믿지 못한다는 듯 다가왔다.
“네가 그때 나를 목숨보다 사랑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네가 몰래 콘돔을 숨기고 임신한 건 아니야?”
진시혁의 말을 듣자 오랜만에 느껴지는 쓰라림이 밀려왔다.
그도 내가 그토록 자기를 사랑했음을 알고 있었다.
진시혁을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내 모든 걸 포기한 채 그가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그런 내 사랑을 진시혁은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다행히 나는 뒤늦게 옳은 선택을 했고, 이제 진시혁이란 과거의 실수도 흘려보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