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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정적은 1초도 가지 않았고 곧바로 거대한 소란이 회장을 쓰나미처럼 휩쓸었다. 욕설과 의문, 카메라 셔터 소리가 뒤섞이며 장내를 가득 채웠다. 성나정의 목소리가 다시 마이크를 통해 회장의 구석구석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제 아버지, 성석진 씨는 강간범이 아닙니다!” 그 한 마디가 마치 끓는 기름에 차가운 물을 부은 듯 순식간에 더 큰 혼란을 폭발시켰다. “성나정 씨,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났는데, 무슨 숨겨진 사실이라도 있나요?” “법이 장난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음대로 사실을 뒤집을 수 있다고?” “피해자를 이렇게 모독하고도 양심의 가책은 없습니까?” 성나정은 휘몰아치는 ‘폭풍’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는 비웃듯 웃으며 가장 큰 소리로 욕하는 남자 기자를 겨누고는 손에 든 마이크를 힘껏 내리쳤다. 쾅! 성나정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현장 사람들은 모두 똑똑히 들었다. “저 성나정은 이미 완전히 몰락했어요. 하지만 누가 제 아버지를 제 앞에서 한 마디라도 욕하면 망한 제 삶으로 몇 명을 데리고 같이 나갈 생각이에요.” 그녀는 어릴 적부터 성씨 가문이 키워온 보석 같은 존재였다. 집은 망했고 가족은 사라졌지만 뼛속에 박힌 자존심과 단단함은 지금 여실히 드러났다. 주위를 씩 둘러보자 지금 성나정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뒤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뒤로하고 무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몇 걸음 걷던 중, 누군가 성나정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뒤돌아보니 상대는 유하준, 그는 이를 악문 채 이런 말을 내뱉었다. “성나정,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 성나정은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고 빨갛게 된 손목을 주물렀다. “뭐 하긴? 사과하려고 왔어. 유 검사, 내가 하는 말 못 들었어? 단, 오늘 말고 내가 정말 잘못했을 때 사과하려던 거였어.” 그러자 유하준이 낮게 물었다. “이런 짓을 하면 어떤 결과가 따를지 알면서 하는 거야?” 성나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유하준, 내가 잃을 게 뭐가 있겠어?”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떨고 있는 임수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나한테 따질 시간 있으면 빨리 무고하니까 네가 책임져야 하는 저 실습생이나 위로해 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말을 마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출구로 향했다. 이 남자와 단 1초라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회의장을 나선 성나정은 곧장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는 구청, 어제 유하준에게 서명받은 이혼 합의서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일 처리 후, 그녀는 문 밖에 서 있었다. 예상했던 해방감도, 미련도 없고 그저 말할 수 없는 공허함만 남았다. 이 관계를 끝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유하준을 놓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제 성나정은 더 이상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 천천히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휴대폰이 진동해 열어보니 임수아가 방금 올린 SNS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유하준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옆모습 사진과 함께 올린 이런 문구. [처음으로 재판 절차를 접했는데 모르는 게 많아요. 다행히 하준 오빠가 차근차근 가르쳐 주셔서 조금 이해됐어요. 그리고 오빠는 늘 법의 의미는 정의를 지키는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오빠는 저에게 정의이자 신념이에요. 제가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면 바로 달려오시거든요.] 성나정은 사진 속 유하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한때, 이런 다정함과 인내심은 오직 자신의 것이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손가락으로 터치해 스크린샷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계정에 로그인해 토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바로 게시했다. 이 게시물이 또 어떤 새로운 폭풍을 불러올지는 모르겠지만 성나정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이내 집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모습은 예상보다 더 흥미로웠다. 유하준, 그리고 눈가가 빨개진 임수아가 소파에 기대 앉아있었다. 성나정이 들어서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유하준 뒤로 바짝 몸을 숨겼다. 유하준은 임수아의 등을 살짝 두드리며 성나정을 올려다보았다. “오, 드디어 못 참고 집까지 데려왔네?” 그 말에 유하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만해. 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고해. 수아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성나정은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유하준을 바라봤다. “임수아 씨가 무고하다고? 유하준, 눈이 멀고 마음이 막혀도 한계는 있어야지.” 그러자 유하준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성나정, 난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수아는 곧 심리치료를 받으러 가야 해. 지금 상태가 좋지 않거든.” 그의 시선이 성나정을 향했다. “너도 지금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잖아. 그러니까 수아랑 함께 치료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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