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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말을 뱉고 나서 송찬미는 심장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너무 긴장해서 펜조차 제대로 쥘 수 없었다. 신지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없어. 오빠는 누구한테도 관심 없는 것 같아.” 그제야 송찬미의 심장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눈이 하늘 꼭대기에 붙어 있어서 나중에 어떤 여자가 그 레이더에 걸릴지 참 궁금하다.” 신지영은 그렇게 말했다. 회상에서 빠져나오자 송찬미는 이미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신승우를 따라 거실로 들어와 있었다. 이곳은 생활감이 꽤 뚜렷했다. 일부 물건들은 누가 봐도 개인 소지품이었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신승우가 이곳에 자주 머무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편하게 앉아.” 신승우는 코트를 벗어 옆의 옷걸이에 걸고 주방으로 향했다. 송찬미는 소파에 앉아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거실은 매우 넓었고 흑백 톤의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신승우라는 사람처럼 차갑고 삭막한 느낌을 주었다. 잠시 후, 신승우가 주방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물컵이 들려 있었다. 그는 물컵을 송찬미 앞에 내려놓았다. 일회용 컵이었지만, 물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송찬미는 컵을 받아 들며 고맙다고 말했다. 남자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쪽 방 두 개가 다 손님방이야. 마음에 드는 곳에서 자. 안에 욕실도 다 있어.” 송찬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승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송찬미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너...” 남자는 2초간 멈칫했다. “옷 사이즈가 어떻게 돼? 갈아입을 옷 좀 가져오라고 하려고.” 송찬미는 멍해졌다. 신승우가 이런 걸 물어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봄날의 샘물처럼 맑은 눈동자에 수줍음이 스치더니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기... 제가 직접 직원분께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신승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전화를 걸었다. “세면도구랑 여자 갈아입을 옷 한 세트 올려보내 줘요.” 말을 마친 그는 송찬미에게 휴대폰을 건네고는 칼같이 선을 지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의 공간이 분리되자 송찬미는 그제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사이즈를 말했다. 전화기 너머의 여직원이 정중하게 물었다. “고객님, 혹시 속옷 사이즈는 어떻게 되시나요?” ‘엥? 속옷까지?’ 송찬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이즈를 읊었다. 직원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준비해서 올라가겠습니다.” 송찬미는 이 호텔 서비스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해주다니 말이다. 전화를 끊고 송찬미는 재빨리 신승우의 휴대폰 화면을 힐끗 쳐다보았다. 기본 배경화면에 깔려있는 앱은 거의 다 업무용 프로그램이나 경제, 비즈니스 관련 앱뿐이었다. 그녀는 딱 한 번 쳐다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남의 휴대폰을 훔쳐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비록 앱을 눌러보진 않았지만 어쩐지 조금 찔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신승우의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똑똑. 송찬미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송찬미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다시 앉아 휴대폰을 앞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약 10분쯤 지났을까, 신승우의 방문이 열렸다. 송찬미는 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그 자리에 시선이 멈췄다. 남자는 회색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팍이 살짝 열려 섹시한 가슴 근육이 드러났고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송찬미는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앞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승우 오빠, 전화 다 했어요. 휴대폰 돌려드리려고 아까 노크했었는데.” “어.” 신승우는 대답하며 다가와 허리를 숙여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가 바로 정면에 서는 순간 송찬미는 얼떨결에 남자의 가슴팍 안쪽을 엿보게 되었고 머리 위 밝은 조명 덕에 그의 복근까지 보고 말았다. 송찬미는 순간 숨을 멈췄다. 신승우가 휴대폰을 집어 들자 송찬미는 그가 휴대폰만 가지고 바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신승우는 그녀 옆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생각해봤는데 이 말은 너한테 꼭 해줘야 할 것 같아.” 신승우는 송찬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차분해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뭔데요?”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남자친구,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송찬미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신승우가 자신에게 심영준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몇 초간 멍하니 있던 송찬미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알고 있어요.” 신승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가난한 척 널 속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송찬미는 손가락을 움츠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양다리 걸친 것도?” 송찬미는 또다시 대답했다. “네.” “안 헤어질 거야?” “일단 모르는 척하다가 나중에 부산에 가서 칼같이 헤어질 생각이에요.” 신승우는 침묵했다. 송찬미는 바닥만 내려다보며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승우가 주는 압박감은 정말 엄청났다. 그가 던지는 몇 개의 질문은 마치 범인을 심문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송찬미는 신승우가 다시 입을 여는 것을 들었다. “네 어머니께서 편찮으신데, 네 남자친구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어?” 그녀는 다소 민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으로는 왜 신승우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의아했다. ‘이 남자가 어떻게 엄마가 편찮으시다는 걸 알았을까? 신지영이 말했겠지.’ “네 어머니 치료비에 비하면 네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야.” 신승우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송찬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난처한 듯 작게 대답했다. “알아요. 그래서 돈 구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내 부탁 하나 들어주면, 내가 네 어머니의 모든 병원비를 책임져줄게.” “네?” 송찬미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신승우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먹물처럼 새까만 그의 눈동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나와 결혼해 줘.” 송찬미는 남자가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들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이 포맷이라도 된 것처럼 하얗게 비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네... 네?”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에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신승우의 얇은 입술이 살짝 열리는 것을 보았고 그가 그 말을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나와 결혼해 줘.” 이 순간, 송찬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의심했다. 의아했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왜요?” 그녀의 경악한 표정과 달리 신승우는 훨씬 담담했다. 그는 여전히 그 차가운 표정 그대로 목소리 톤에도 아무런 변화 없이 말했다. “집에서 결혼하라고 성화야. 난 아내가 필요하고 넌 돈이 필요하지. 서로 윈윈 아니겠어?” ‘윈윈?’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건 결혼이지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협상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어찌 윈윈이라는 말로 따질 수 있단 말인가? 송찬미는 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신승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생각 정리되면 언제든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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