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예하늘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인제 와서 그녀가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감전이나 된 듯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되풀이했다.
“가짜라니...”
‘나와 기도훈을 이어주는 유일한 증명조차 철저한 사기극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그녀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며 정유리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옆방으로 걸어갔다.
나올 때는 치마가 거대한 웨딩드레스를 들고 있었다. 화려한 새틴 소재와 섬세한 자수가 햇빛 아래 예하늘의 눈을 찔렀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그녀에게 남겨준 웨딩드레스였다.
“수석 디자이너의 유작이라더니 정말 아름답네.”
정유리는 웨딩드레스를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도 결혼할 때 꼭 입고 싶어.”
“어디서 가져왔어?”
예하늘의 심장이 반 박자 멈췄다. 결혼 후, 그녀는 직접 그 웨딩드레스를 기씨 저택으로 가져와 밀실에 숨겨두고 누구도 만지지 못하도록 엄명했었다.
피가 끓어올라 끝없는 분노로 변한 그녀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손이 잽싸게 뻗어 나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았다. 힘이 너무 세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등 뒤에서 기도훈의 목소리가 차갑고 딱딱하게 흘러나왔다.
“고작 웨딩드레스 갖고 그럴 필요 있어?”
예하늘은 고개를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절망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왜요?”
밀실의 비밀번호는 둘만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몇 번이고 물러섰는데 왜 마지막 남은 어머니의 유품마저 빼앗으려 하는 거지?’
기도훈의 시선이 그 웨딩드레스를 훑었다. 그는 마치 아무 상관 없는 일인 듯 태연하게 말했다.
“네 손에서 먼지만 쌓이는 것보다 드레스가 제 역할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정유리의 어머니는 평생 그늘 속에서 사셨어. 이 웨딩드레스를 입음으로써 너의 어머니도 일종의 방식으로 그분의 사랑을 인정하는 셈이 될 거야. 정유리도... 당당한 신분이 될 수 있고.”
“당당한 신분이라니요?”
예하늘은 처절하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도현 씨와 결혼할 수 있는 당당한 신분이라는 건가요?”
집안 잔치, 그것은 그녀를 뼈까지 발라내려는 최후의 만찬이었다. 하늘 같은 분노와 굴욕이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그녀는 꽃병을 집어 정유리에게 던졌다.
쾅!
무거운 꽃병은 그녀 앞에 막아선 기도훈의 어깨에 떨어져 튕겨 나갔고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예하늘, 미치지 마!”
기도훈은 차갑게 그녀를 보며, 태연하고 침착하게 마치 추태를 부리는 미친 사람을 보는 듯했다.
“미치다니요? 이게 겨우 시작인데요?”
예하늘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들이 강요하고 도대체 누가 미친 사람이라는 거지?’
딸깍.
그녀는 휴대하고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파란 불꽃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비췄다.
“저는 태생적으로 결벽증이 있어요. 물건이 더러워지면 차라리 망가뜨릴지언정 더러운 것들에게 주지 않죠!”
“안 돼!”
정유리는 웨딩드레스를 품에 꽉 안았다. 예하늘은 기도훈을 뿌리치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으로 정유리의 목을 누르고 웨딩드레스를 빼앗으려 했다.
두 여자는 발코니 끝까지 갔고 웨딩드레스는 찢어지며 거대한 구멍이 났다.
기도훈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유리를 도와 웨딩드레스를 예하늘의 손에서 거칠게 빼앗았다.
쭉.
이미 찢어져 있던 웨딩드레스는 엄청난 힘으로 가운데가 완전히 찢어졌다.
이 갑작스러운 힘 때문에, 예하늘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지며 그대로 뒤로 넘어져 3층 발코니 난간을 넘어 추락했다.
“하늘아!”
기도훈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당황함이 묻어났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빠르게 떨어지는 중력감 속에서 수많은 장면이 예하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난 1년간의 모든 것, 만남, 결혼, 배신...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투신하기 전, 자신을 돌아보던 마지막 눈빛에 고정되었다.
쿵!
그녀는 아래층 딱딱한 정원 타일에 세게 부딪혔다. 극심한 고통이 순식간에 전신을 휩쓸었다. 아랫배에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고 몸 아래로 따뜻한 액체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그녀의 옷을 붉게 물들였다. 눈이 시릴 정도였다.
“하늘아!”
귓가에 기도훈의 희미한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는 감각 없는 손가락을 들어 손에 든 라이터를 눌렀다.
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