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불꽃은 반쯤 찢어진 웨딩드레스에 닿은 후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발밑으로는 계속해서 피가 퍼져나갔다. 눈앞에는 어머니의 마지막 심혈이 불꽃 속에서 뒤틀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이 천천히, 천천히 재가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심장이 극도로 아파지자 오히려 허무한 해탈 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도훈이 그녀에게 진정한 결혼조차 인색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그 남자와 의절했고 다시는 얽히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의식이 희미한 채 들것에 누워 있었다.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환자는 대출혈입니다. 유산 징후가 있어요! 가족에게 즉시 연락하세요!”
그녀는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야는 흐릿했지만 기도훈과 정유리가 멀리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정유리가 과도한 힘으로 탈구된 손목을 살펴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대표님,사모님께서 유산 징후가 있어 위급합니다. 치료를 통해 아이를 지킬지, 아니면 즉시 수술을 준비할지 결정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기도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눈에는 잠깐의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잘못 아신 것 같은데요? 제 아내는 임신하지 않았어요.”
간호사가 다시 확인하려는 순간, 정유리가 즉시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며 손목을 기도훈 앞에 내밀었다.
“도훈 씨, 손목이 너무 아파요. 부러진 거 아니죠?”
기도훈은 즉시 시선을 거두고 드물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바로 최고의 정형외과 의사에게 데려갈게.”
그는 정유리를 부축하고 돌아서 떠나며 들것에 누운 예하늘을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단호한 뒷모습을 보며, 예하늘의 마지막 희미한 기대마저 완전히 꺼져버렸다. 그녀는 힘들게 의사의 소매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제가 직접 서명할 수 있어요... 즉시 수술해 주세요.”
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 부탁 하나만 더 들어줘요. 기씨 집안 어르신께 전화해서 제가 임신했다고 전해줘요.”
의사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수술등이 켜졌다. 마취 의사가 마취제를 주입하려 할 때 예하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꺼낸 배아는 병에 담아 보관해줘요. 누군가... 그걸 필요로 할 거예요.”
마취 의사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흐르자 의식이 서서히 멀어졌다. 예하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길고 가는 속눈썹이 창백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몸의 모든 고통이 마치 사라진 듯했다. 모든 것이 마침내 끝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예하늘은 병실에서 눈을 떴다. 귀가에는 간호사들의 희미한 수다가 들려왔다.
“기 대표님이 정유리 씨를 정말 아끼나 봐요. 뼈가 살짝 탈골됐는데 정형외과 전체를 빌려서 치료해주다니요.”
“맞아요. 안타깝게도 아내인 예하늘 씨가 유산했는데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고, 기 대표님은 한 번도 병문안 오지 않았어요.”
“그만 얘기해요. 만약 깨어나 듣기라도 하면 안 좋잖아요.”
예하늘은 조용히 들으며 마음속에는 더는 어떤 물결도 일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침대 머리맡을 바라보았다. 배아가 담긴 병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기도훈이 단 한 번이라도 신경 썼다면, 이 병실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긴 ‘선물’을 발견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간호사가 나가자 그녀는 심한 통증을 참으며 팔의 링거 바늘을 뽑았다. 피가 침대보에 붉은 매화꽃처럼 번졌다.
떠나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병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도훈 씨, 다시는 보지 말아요.’
반대편 병실에서, 기도훈은 정유리가 늘어놓는 시시한 연예인 가십을 듣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답답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맴돌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예하늘의 병실로 향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병실은 이미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만이 남아 있었다.
“어? 예하늘 씨는 어디 갔어요?”
따라온 정유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기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불안감은 더욱 강해졌다.
그의 시선은 침대 머리맡을 훑다가 마침내 눈에 띄지 않는 투명한 병에 고정되었다. 그 안에 담긴 피 묻은 형체를 갖춘 작고 어린 배아를 본 순간, 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때, 병실 밖에서 기만섭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며느리가 어느 병실에 있어! 임신했는데 다쳤다니. 우리 기씨 가문의 손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들...”
문을 거칠게 열던 그는 기도훈의 손에 들린 그 병을 보자마자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