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그 뒤로 며칠 동안 정하루는 매일이 지옥 같았다.
그곳에서 그동안 곱게 자란 정하루는 갖은 고초를 겪었다.
같이 수감된 사람들은 사주라도 받은 건지 작정하고 정하루를 괴롭히고 폭행했다. 정하루는 이미 손목을 다친 상태였는데 그곳 사람들은 일부러 그녀의 다친 손목을 짓밟아 으스러뜨렸다.
며칠 뒤 석방되었을 때 정하루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숨만 내쉬었다.
그녀가 지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신청한 비자가 발급되었다는 메시지가 그녀를 살렸다.
정하루는 택시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간 뒤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세계 여행을 갔다가 이제 막 모든 소식을 알고 급하게 돌아온 도시율이 보였다.
도시율은 정하루의 몰골을 보더니 곧바로 눈물을 터뜨리며 끊임없이 사과했다.
“하루야, 미안해. 다 내 탓이야! 나는 예전부터 삼촌의 전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런데 삼촌이 그 여자를 잊지 못해서 일부러 너한테 꼬셔보라고 한 거야...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난 그 여자가 정해은이라는 걸 진짜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 죽어도 너한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정하루는 고개를 저으며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탓 아니야. 이미 다 지난 일이야. 난 이제... 다 내려놨어. 시율아, 나 떠날 거야. 앞으로는 아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야.”
도시율은 당황하더니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하루야, 가지 마... 여기 있어. 내가 돌봐줄게. 내가 너 지켜줄게...”
“아니.”
정하루가 입을 열었다.
“여긴 내가 미련을 둘 만한 것이 없어.”
도시율은 엉엉 울었다. 정하루의 한없이 적막하면서도 결연한 눈빛을 본 순간, 도시율은 무슨 말을 해도 정하루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결국 도시율은 눈이 빨개진 채 정하루를 도와 짐을 정리했다.
떠나기 전, 정하루는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이제는 정명진이 데려온 내연녀와 사생아가 살게 된 집을 바라보았다.
정하루는 미리 준비해 둔 기름을 뿌린 뒤 가사도우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불을 붙였다.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이 과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했다.
정하루는 짐을 챙겨 단호히 몸을 돌렸다.
도시율은 차로 정하루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면서 끝없이 사과했고, 차고 안의 모든 차를 주겠다고 했다.
정하루는 고개를 저은 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창밖의 뒤로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이젠 필요 없어. 그리고 아직 나한테는 진짜 인연이 찾아오지 않은 거야.”
정하루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해방감과 피곤함이 어우러진 표정을 해 보였다.
“난 예쁘니까 앞으로 더 좋은 남자, 돈 많은 남자, 날 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될 거야...”
도시율은 황급히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우리 하루는 예쁘니까 앞으로 금이야 옥이야 아껴줄 사람을 분명히 만나게 될 거야!”
공항에 도착한 뒤 도시율은 정하루를 안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다. 도시율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다.
“하루야, 꼭 잘 살아야 해. 꼭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야 해!”
정하루는 도시율을 꼭 안고서 그녀의 등을 토닥이다가 놓아준 뒤 미련 없이 손을 흔들며 검색대 보안 검색대로 걸어갔다.
도시율은 정하루가 사라진 뒤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도시율은 결국 용기 내어 분노와 원망을 한가득 안은 채 도유환에게 연락했다.
도유환은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삼촌.”
도시율은 비음 섞인 목소리로 그를 향해 화를 냈다.
“삼촌이 정해은 그 여자 좋아하는 거 알아. 그래도 하루는 삼촌이랑 무려 3년을 만났어. 이제 하루는 떠날 거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마지막 배웅도 하지 않을 거야?”
전화 너머로 정적이 이어졌다.
잠시 뒤 도유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서 쉽게 눈치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누가... 떠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