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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정하루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정하루의 손등 위 주삿바늘 위치를 조절하고 있던 간호사는 정하루가 정신을 차린 걸 보고 말했다. “정하루 씨, 드디어 깨어나신 거예요? 정하루 씨 많이 다치셔서 당분간은 입원해야 해요. 그리고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수납도 하셔야 해요.” 정하루는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가 다시 한번 말하려고 했다. “정하루 씨...” “병원비는 제가 냈습니다.” 문가에서 너무도 익숙한 낮은 음성이 들려온 순간 정하루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늘씬한 자태로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도유환을 바라보았다. 간호사는 상황을 보더니 눈치 빠르게 병실을 떠났다. 도유환은 안으로 들어가 정하루의 상처를 힐끗 보더니 손을 뻗었다. 그녀의 이마를 만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하루가 고개를 틀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도 대표님, 바쁘신 분이 본인이랑 아무 상관 없는 저는 왜 보러 오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도유환은 흠칫했다. “나 말고 네 병문안을 올 사람이 있긴 해?” 그 말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 정하루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찔렀다. 도유환의 말대로 그녀를 보러 올 사람은 없었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빠는 정해은을 편애했으며 계모는 가식적이었다. 그 집은 이제 더 이상 정하루의 집이 아니었다. 정하루는 결국 반항하는 방식으로 상처 입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며 아무도 필요 없는 척, 모든 일에 무관심한 척했다. 지난 3년 동안 도유환은 매번 그녀가 그를 필요로 할 때마다 나타났고 그렇게 정하루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유환이 자신의 안락한 집이 되어줄 거라고 착각했다. 이제 도유환은 그녀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사람이 되었다. 정하루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무도 안 와도 대표님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죠. 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라고. 저는 제가 싫다는 사람한테 들러붙을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정하루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설마 제가 좋아했다고 한 거 진짜 믿으시는 건 아니죠? 그건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대표님이 저를 섹파라고 생각한 것처럼 저도 대표님을 똑같이 생각했어요. 솔직히 잠자리도 그냥 그랬어요. 이제 다 나으면 앞으로 대표님보다 더 젊고 더 잘하는 남자랑 만나려고요.” 도유환은 눈이 빨개진 채 화를 내는 정하루의 모습을 바라보며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때 간호사 한 명이 부랴부랴 안으로 들어왔다. “도유환 씨, 정해은 씨께서 검사를 마치시고 도유환 씨를 찾으세요.” 정하루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말했다. “대표님이 사랑하는 여자나 보러 가시죠. 여긴 대표님이 필요 없거든요.” 도유환은 정하루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선을 긋듯 차갑게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건 네가 시율이 친구이기 때문이야. 시율이가 나한테 너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거든.” 정하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크게 웃자 상처가 벌어지면서 아팠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처와는 비교도 안 되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정하루는 웃는 걸 멈춘 뒤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도유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약해 보였다. “저는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도유환은 잠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까만 눈동자에서 어떠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 듯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다른 이들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도유환은 처음으로 정하루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 정하루는 침대 위에서 그가 아무리 괴롭혀도 눈꼬리만 빨개진 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정하루의 뺨에 남은 눈물 자국에 도유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뭔가 말하고 싶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호사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 미련 없이 떠나는 도유환의 모습에 정하루는 끝내 참지 못하고 병상에 누운 채로 소리 없이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정하루는 자신이 오래 울 줄 알았으나 의외로 눈물은 금방 말랐고 남은 것은 숨 막히는 적막뿐이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정하루는 홀로 병원에서 지내며 스스로를 보살폈다. 연고를 바를 때는 아파서 식은땀이 흘렀고 밥을 먹을 때면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복도에서 간호사들이 옆 VIP 병실에 있는 정해은은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도유환이 직접 다정하게 밥도 먹여주고, 물도 먹여주고, 밤새 간호도 해주면서 끔찍이 아껴준다며 수다를 떨었다. 한 번은 옆 병실을 지나칠 때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도유환이 침대 옆에 앉아 사과를 깎고 정해은이 그의 어깨에 기대어 부드럽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정하루는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누군가 심장을 짓이기듯 괴로워졌다. 하지만 정하루는 울지 않았다. 정하루는 마음을 접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그녀는 절대 도유환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퇴원 후 정하루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비자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도시를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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