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정하루는 비자를 신청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성 들여 화장한 모습의 계모가 보였다.
계모는 정하루를 보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루야, 너 집에 너무 안 들어오는 거 아니니? 너 외박한 지 며칠이나 됐는지 알고 있어? 여자애가 그러면 못 써...”
정하루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현관에 있던 큰 화분을 쓰러뜨렸다.
그 순간 쾅 소리와 함께 화분이 산산조각 났다.
임선경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면서 뒷걸음질 쳤다.
정하루는 평온한 듯하지만 경멸과 냉담함이 자리 잡은 얼굴로 임선경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탄 낸 내연녀 주제에 지금 본처의 딸을 혼내려는 건가요? 임선경 씨, 똑똑히 기억하세요. 제가 이 집에 있는 한 당신은 평생 고개 숙이고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해요!”
정하루가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자 임선경은 화가 나서 안색이 창백해진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하루!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인 거야?”
정하루의 아빠는 소리를 듣고 서재에서 뛰쳐나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휘청대는 임선경을 부축하며 분노 어린 눈빛으로 정하루를 바라봤다.
“돌아오자마자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구나! 이제 철 좀 들면 안 되겠니?”
정하루는 임선경을 감싸는 아빠의 모습에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해 차갑게 웃음을 흘리며 비아냥댔다.
“제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요? 좋아요. 그러면 재산 나눠주세요. 돈만 주시면 해외로 떠나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게요.”
정명진은 흠칫하더니 이내 가식을 떨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해외? 여자애 혼자서 해외에서 사는 건 너무 위험해. 여기는 영원히 네 집이야. 우리는 네 가족이고...”
“가족이요?”
정하루는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말을 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연기 집어치우세요. 당신이랑 저 여자, 그리고 정해은이야말로 가족이죠. 엄마가 죽었을 때 제 집은 이미 사라졌어요. 금액이나 얘기하세요. 난 내가 받아야 할 부분 받고 떠날 거니까요.”
정명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연기를 하며 말했다.
“네가 아빠를 많이 원망하는 건 알아... 일단 아빠가 10억을 줄 테니까 가서 기분 전환도 좀 하고...”
“고작 10억이요?”
정하루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명진 씨, 당신이 오늘처럼 잘살 수 있는 건 우리 외할아버지가 준 자금과 우리 어머니 재산 덕분이에요. 심지어 당신 목숨도 우리 엄마의 목숨으로 맞바꾼 거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우리 엄마 돈으로 내연녀랑 사생아를 먹여 살리면서 우리 엄마 집에서 얹혀살고 있죠. 그래 놓고 친딸인 내게는 겨우 10억을 주면서 먹고 떨어지라고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 거죠?”
정명진은 정곡을 찔리자 화를 냈다.
“그냥 얘기해! 대체 얼마를 받고 싶은 거야?”
미리 준비해 두었던 정하루는 가방 안에서 서류를 꺼내며 차분하게 금액과 주식 이름을 얘기했다.
“미쳤어? 그건 안 돼!”
정명진은 발작했다.
“그건 태신 그룹의 반을 달라는 소리잖아!”
정작 정하루는 느긋하게 창가 쪽으로 걸어가 아래층에 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싫어요? 그러면 할 수 없죠. 저는 이 별장 밖에 폭탄을 묻었어요. 오늘 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돈을 넘기든지, 여기서 다 같이 죽든지 선택하세요.”
정명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정하루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 너 미쳤어?”
“맞아요. 저는 미쳤어요.”
정하루는 스스럼없이 인정하면서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들 때문에 완전히 실성했죠.”
정명진은 벌게진 얼굴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정하루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는 듯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압도적이었다.
정명진은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소파에 주저앉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정하루가 준비한 계약서에 사인했다.
“어서... 어서 폭탄을 다 해제해!”
정명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하루는 계약서를 들고 자세히 사인을 확인한 뒤 경멸 어린 표정으로 차갑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폭탄 같은 건 애초에 없었으니까. 거짓말이었어요. 당신도 이런 방식으로 우리 엄마를 속여서 결혼했잖아요.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던데 저도 당신을 닮았나 봐요.”
정명진은 그제야 농락당한 사실을 깨닫고 화가 나서 그대로 까무러칠 뻔했다. 그는 정하루를 손가락질하며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정하루는 그에게 시선조차 줄 생각이 없어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잠깐!”
정명진은 씩씩대면서 정하루를 불러세우더니 억지로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네 언니가... 오늘 남자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올 거야. 예전에 네가 했던 짓들 다 상관 안 할게.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식사를 끝마쳐야 해!”
정명진은 일부러 더 심각한 척하며 경고했다.
“네 언니 남자 친구는 도유환이야. 도씨 가문이 이 도시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는지는 너도 잘 알겠지. 우리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집안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절대 문제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있어!”
위층으로 올라가던 정하루는 우뚝 멈춰 섰다. 순간 그녀의 몸이 굳었다.
도유환...
오늘 도유환이 정해은 남자 친구의 신분으로 그들의 집에 방문할 예정이라니.
다음 순간, 문이 열렸고 정해은이 도유환의 팔에 팔짱을 끼고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