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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한 송여진은 북받치는 감정을 뒤로 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주지한을 바라봤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주지한은 얼굴이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줄 거예요?” 주지한이 눈을 아래로 뜨고 송여진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이 모든 걸 답해줬다. 목숨을 걸고 송여진을 구하긴 했지만 믿는 사람은 오직 서유진이었다. “유진을 싫어한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이 정도로 잔인할 줄은 몰랐어요. 어떻게 불을 지를 생각을 해요?” 주지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이 착해서 신고하지 않았지만 누나,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아니면...” 이 말을 뒤로 주지한은 서유진을 안고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에 우뚝 선 송여진은 눈앞에 수많은 화면이 스쳐 지났다. 전생에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서던 모습, 아무런 주저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들던 모습, 죽기 전 서유진과 함께하게 허락해 달라고 하던 모습이 떠올라 송여진은 변명할 힘조차 잃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이것도 나쁠 건 없지. 주지한, 행복하길 바래.” 한편, 가슴이 철렁한 주지한은 고개를 돌렸다가 덤덤한 송여진의 얼굴을 보고 중요한 뭔가를 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앙다물고 이렇게 말했다. “5일 후면 나와 유진의 약혼식이에요. 시간 맞춰서 와요.” 송여진은 서유진의 도발이 담긴 눈빛을 보며 화내는 대신 그저 웃었다. “그래요. 꼭 갈게요.” 5일 후, 두 사람이 성공적으로 약혼식을 올리면 전생에 빚진 걸 다 갚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충섭과 진성희는 서유진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주지한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주씨 가문 본가에서 약혼식을 올리는 걸 동의했다. 송여진은 도착하자마자 주지한이 서유진을 안고 식장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걸 보았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수십조가 넘는 주얼리를 한 서유진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약혼식에 참가한 하객들이 수군거렸다. “주씨 가문은 무슨 약혼식을 또 올린대? 주 대표 사고 났던 거 아니야? 전에는 약혼녀가 송 씨였던 것 같은데.” “소식이 느려도 너무 느리네. 주 대표는 많이 다쳐서 실종됐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는데 기억을 잃었어. 지금 옆에 선 여자는 그때 데려온 거고.”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구석에 선 송여진을 안타까워했다. “소꿉친구에서 결혼까지 골인하나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구미가 당긴 하객들은 송여진과 주지한의 사랑을 한탄하기 시작했다. 옆에 선 송여진은 그들이 토론하는 걸 처음부터 들었지만 못 받아들일 정도로 괴로운 건 아니었다. 송여진은 식장 한가운데 선 주지한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서유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걸 보았다. “여러분, 이 사람은 제가 평생을 함께하고픈...” 말이 끝나기 바쁘게 건물이 휘청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곧이어 천장이 무너졌고 서유진은 얼른 주지한을 밀어냈지만 본인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낙석에 찰과상을 입었다. 주지한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쪽으로 달려가 서유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다만 그 누구도 주지한에게 부딪혀 바닥에 넘어진 송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낙석이 송여진의 팔에 떨어졌다. “아악.” 송여진이 낸 소리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에 묻혔다. 팔이 뒤틀린 채 겨우 벽에 기대어 앉는데 피를 너무 흘려서 그런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흘러내린 피가 옷을 빨갛게 물들였다. 주지한은 서유진을 안고 밖으로 뛰어가다 옆에 있는 송여진을 보고 눈빛이 흔들리며 자리에 우뚝 멈춰 섰지만 입술을 앙다물더니 이렇게 말했다. “누나, 유진은 임신해서 다치면 안 돼요. 여기서 조금만 버티고 있어요. 유진이 안전해지면 그때 데리러 올게요.” 송여진은 아직도 기대라는 걸 하는 자신이 너무 우스워 눈을 질끈 감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얼른 가봐요.” 송여진의 눈빛은 오랫동안 고여서 썩은 물처럼 혼탁했다. 주지한은 목구멍이 메어와 입을 벌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송여진은 힘껏 상처를 눌러도 점점 더 많이 새어 나오는 피를 보고 그냥 포기했다. ‘주지한, 저번 생에 진 빚은 다 갚은 것 같은데.’ 의식이 흐릿해지는데 누군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착각이겠지?’ ... 다시 깨어났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건 살을 가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귓가에는 간호사들이 토론하는 소리가 들렸다. “3일이나 지났는데 연락이 오는 사람 없어?” “말도 마. 어쩌면 찾아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차별 대우도 유분수지. 맞은편 VIP 병실은 고작 찰과상인데도 남자 친구가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키더라. 그것도 모자라 최상급 의료진까지 항시 대기하고 있잖아...” 송여진은 이제 이런 말을 들어도 더는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송여진의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들어왔다. “여진아, 계속 연락이 안 되길래 우리가 데리러 왔어.” 문성애가 꼭 안아주자 송여진의 눈물이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처음으로 꾹꾹 눌러 담지 않고 이렇게 통쾌하게 울어보는 것 같았다. 송정국이 눈물을 닦아주며 문성애와 같이 안아줬다. “여진아, 그동안 많이 서러웠지. 이제 집에 가자.” 송여진이 송정국의 품에 안겨 울먹였다. “네.” 개인 비행기가 이륙하고 송여진은 홀가분하게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내다봤다. ‘주지한, 이번 생은 네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게 허락해 줄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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