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네가 먼저 고개 숙여야 해

강현우는 강인호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아내 서지윤은 속으로는 쓸모없는 남자라며 남편을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재빨리 거들며 반격에 나섰다. “아버님, 인호는 역시 아버님께서 손수 가르치신 덕에 기세 하나는 아버님 젊었을 적 못지않네요. 다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겠죠.” 말속에 숨은 뜻이 있음이 분명했다. 강인호가 외부 사람을 두둔하며, 정작 자기편을 몰아세운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강석태이 그동안 강인호에게 가장 불만을 품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지윤은 상황을 지혜롭게 이용할줄 아는 여자였다. 예상대로, 강석태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원래도 좋지 않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인호야, 저 여자를 당장 내보내거라. 여기 그 누구도 저 여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강석태은 단호히 명령했다. 그의 말투에는 단 한 치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자 강인호는 잠시 강석태를 바라보다,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희는 오늘 할아버지의 가족 모임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신지은의 손을 잡고 뒤돌아섰다. 신지은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마음 한편이 벅차올랐다. 전생이든 지금이든, 강인호는 언제나 변함없이 신지은을 선택해 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그 순간 뒤에서 강석태의 분노 섞인 호통이 들려왔다. “강인호! 내가 가라고 했느냐? 당장 멈춰라!” 강석태는 강인호의 당돌함에 화가 치밀어올라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헐떡였다. 강현우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부축하며 말했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천천히 숨을 고르세요.” 그러고는 문 쪽을 향해 돌아서 문 앞까지 간 강인호를 향해 호통쳤다. “강인호! 당장 안 오고 뭐 해, 할아버지 쓰러뜨리게 할 작정이니?” 강인호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여러 사람이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부축하고 있었다. 신지은은 그의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석태의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