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비행기가 떠나기까지 3일이 남았다.
임진희는 해변에서 고기를 굽는 백승우의 사진을 보내왔다.
[아이 임신한 기념으로 말디부 휴가를 선물로 받았어요. 아기 임신했으니까 힘들다고 누워서 먹기만 하면 된대요.]
안유정은 무시한 채 친한 친구들 몇 명과 약속을 잡고 마지막으로 한 번 모이기로 했다.
앞으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 파티에서 안유정은 즐겁게 놀았다.
비행기가 뜨기 이틀 전, 임진희는 백승우가 책을 보는 사진을 보냈는데 책 제목이 [육아 교육 가이드]였다.
[초보 아빠가 아기 교육에 정성을 들이네요. 아직 뱃속 콩알만 한 존재인데 아빠가 벌써 배에 대고 얘기를 해요.]
안유정은 여전히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현지 지폐와 현금으로 바꾸고 모든 은행 카드를 해지했다.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 이번에는 임진희가 동영상을 보냈다.
영상 속에는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불꽃놀이가 담겨 있었다.
임진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고 백승우는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달랬다.
“왜 울어, 나중에 서프라이즈가 더 있는데.]
[날 위해 섬 하나를 통째로 빌리고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말디부에 있는 모든 폭죽을 샀어요.]
오늘이 임진희 생일이다.
생일에 임신까지 두 사람에겐 아주 겹경사인 셈이다.
그걸 본 안유정은 담담하게 웃으며 지역 자선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가난한 산간 지역에 기부하고 싶은 옷이 있어요.”
곧이어 현지 자선 단체의 담당자가 차를 몰고 왔다.
백승우가 없는 며칠 동안 그녀는 일찌감치 짐을 모두 싸서 총 5개의 큰 가방에 옷과 신발을 가득 채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부했다.
신분증, 주민등록부, 졸업장 등 ‘안유정’의 것들과 집에 있던 생필품까지 모두 직접 장례식장으로 가져가 직원에게 돈을 주고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5년 동안 살았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안유정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이미 그녀가 깨끗이 정리한 이 집에 그녀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가 고작 하나 챙긴 가방엔 여권만 들어 있었다.
오래된 물건이라면 아직 손에 남은 휴대폰이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는 터미널 앞에 차를 세웠고 그녀가 휴대폰으로 요금을 지불하려고 할 때 마침 백승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유정아, 나 출장 갔다 돌아왔어. 지금 너 데리러 집에 갈 테니까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그가 돌아왔다.
임진희를 옆에 낀 채.
안유정은 마침 차에 앉아 터미널에서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을 목격했다.
백승우는 커플용 모델임이 분명한 파란색과 분홍색 캐리어를 하나씩 끌었고, 임진희는 그의 팔짱을 낀 채 가녀린 척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출장 힘들었어?”
“아니, 너무 힘들지는 않았어. 참, 내가 알기론 오늘 네가 준 선물 열어볼 수 있다고 했지?”
“그래.”
“너무 기대되네. 일주일 참느라 힘들었어. 매일 네가 나한테 무슨 선물을 줬을지 생각했어. 결혼기념일이니까 당연히 의미 있는 선물이겠지?”
“무척 의미가 있지. 보면 알 거야.”
“알았어. 그럼 2시간 후에 집에 갈 테니까 기다려.”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때쯤이면 그녀의 비행기도 국경선을 넘었을 테니까.
“좋아.”
“그럼 이따 봐. 사랑해, 유정아.”
전화를 끊은 뒤 불쾌감을 표시하며 입을 삐죽거리는 임진희를 보자 백승우는 그녀를 달래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내 기사가 말했다.
“아가씨, 아직 요금 계산 안 했어요.”
시선을 돌린 안유정은 운전기사에게 남은 돈을 전부 건넸고 운전기사는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가씨, 돈 잘못 줬어요. 2만 6천원이지 260만원이 아니에요. 바로 돌려줄게요.”
“됐어요.”
안유정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어차피 앞으로 쓸 일도 없어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천만에요. 제 직업인 데다 요금도 내셨으니 당연히 모셔다드려야죠.”
“달라요. 기사님은 저를 새로운 미래로 가는 길로 데려다주셨어요.”
차에서 내린 안유정은 휴대폰 전원을 끄고 유심 카드를 꺼내 무심코 쓰레기통에 버린 뒤 한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매우 기뻐했다.
“언니, 고마워요!”
안유정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야.”
아이의 엄마는 당황스러워했다.
“이렇게 비싼 건 받을 수 없어요.”
안유정이 물었다.
“해외에 가시는 거예요?”
“네, 애 아빠 찾으러 우페리카로 가요.”
“그럼 받으세요. 거기서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네, 감사해요.”
안유정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재촉하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원 승객님, 안내 방송이 들리는 즉시 23번 게이트에서 탑승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공편이 곧 이륙할 예정이니...”
안유정은 여권을 들고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본 후 의연하게 탑승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